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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대의 봉건성을 탈피하고 시민계급의 문화를 추구했던 건축가 로스의 대표 저작
우리에게 「장식과 범죄」라는 글로 잘 알려져 있는 아돌프 로스는,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고 말한 르 코르뷔지에의 표현대로 아르누보 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시대를 알리는 건축을 정의하고 실현한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건축가로서의 명성 외에도 그를 자주 언급하고 인용하는 이유는 그의 저작과 관련해서이다. 1921년 발간된 『허공에 외쳤다』와 1931년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896년 로스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언론매체에 쓰기 시작한 사설과 논평, 강연들을 묶은 책으로 건축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서다. 이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판, 재편집, 각국의 번역본 등으로 출판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1년 인스부루크의 브렌너 출판사가 문장을 소소하게 수정, 삭제하여 펴낸 판본이 재편집되어 발간되거나 번역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돌프 로스가 생전에 직접 선별하고 편집한 판본이므로 로스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따라서 여타의 번역본들과 같은 재편집이나 도판을 첨부하지 않고 이 판본을 번역, 편집하였다. 단지 이 두 권의 책을 합본하고 로스의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비평인 「장식과 범죄」를 제목으로 삼아 출간하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아돌프 로스는 1870년 지금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로스는 어린 시절 공예공방 동네를 놀이터로 삼아 성장했고 그 후 보헤미아에 있는 공예학교와 빈의 미술대학을 거쳐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93년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 박람회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삼 년간 체류한다. 그곳에서 그는 공사판과 접시닦이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빈곤 속에 살았지만 루이 헨리 설리반과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인물들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적 건축이 꽃피던 시기를 체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유형(고층건물, 사무실건물과 백화점 등)과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정신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세기의 전환기에 실용과 합리를 추구했던 미국이 지향한 고전주의 건축에서 로스는 고대의 형태적 자산과 그리스적 가치관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그의 건축관에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
26세의 나이로 빈에 귀향한 로스는 영미의 근대성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퇴행성을 보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열었지만 일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평론가로서의 활동은 허락되어, 그의 전방위적인 문화비평의 시기를 연다. 처음에는 주간지와 일간지에, 1903년 이후로는 문인이자 그의 지우인 페터 알텐베르크와 함께 주간한 자신의 잡지에 글을 발표하며 특히 당시의 주류세력이었던 제체시온(빈 아르누보)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카를 크라우스라는 인물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논쟁과 풍자의 대가였던 크라우스는 『횃불』이라는 자신의 잡지를 도구로 ‘예술의 도시’ 빈에 숨겨져 있던 위선과 부패를 들춰내고 비판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빈은 왜 이러한 인물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