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 진은영, 송경동, 오은, 강성은, 유현아, 서효인, 임경섭, 김현, 박소란, 지현아, 송승언, 임승유, 김영미, 임솔아, 안태운, 권창섭, 한연희, 희음, 윤은성, 배시은, 장혜령, 나하늘, 강상헌, 박은지, 권누리, 정재율, 한여진, 김리윤, 김선오, 송정원, 윤유나, 장미도, 임유영, 박규현, 하미나, 계미현, 한영원,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

2026년 8월 4일, 오늘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시작한 지 1033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1000일 동안 온 세계가 집단학살을 목도했지만 막지 못했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 무기와 장비를 팔고, 팔레스타인의 천연가스를 탐내면서, 침묵하고 묵인함으로써 학살에 동조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자지구 사람들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았고 숨김없이 참상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력감과 낙담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팔레스타인 곁에 서야 합니다.
여기, 시 쓰는 47인이 팔레스타인을 위한, 팔레스타인을 향한 ‘응답’으로서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제목은 『응답의 시』.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 진은영부터 계미현 한영원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까지, 오랜 시간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한국의 대표 시인들부터 문단이라는 테두리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안팎의 시인들까지, 쉽게 쓰이지 않는 시, 오직 팔레스타인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향해 쓴 신작 시들을 모았습니다.
『응답의 시』 표지에는 하얗고, 꼬리가 긴 연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바로 가자 출신의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학자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에 나오는 연입니다. 시인은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 살림을 팔아 하얗고 꼬리가 긴 연을 만들어 달라고, 가자의 한 아이가 그 연이 날아오르는 걸 보며 “순간,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합니다(류송 옮김, 『팔레스타인 시선집』). 리파트 알아리르는 2023년 12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족과 함께 사망했습니다. 그는 생전의 한 영상 인터뷰에서 학자인 자기 집에 있는 무기는 마커펜 정도라서, 이스라엘이 공격해 온다면 마커펜을 던져 저항하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응답의 시』가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한국에 남기는 꼬리 긴 흰 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저항하겠다는 연대의 증표로서 우리의 마커펜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치이론가 조디 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서 ‘연날리기’는 점령과 봉쇄를 부수는 저항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2011년 가자 해변에서 1만 5000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동시에 연을 띄운 일, 2018 귀환 대행진 때 방화용 연을 날려 가자 장벽 인근의 이스라엘 경제에 타격을 준 일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연을 통해 이스라엘의 방공 체계를 돌파하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이 연을 띄워 누구의 것도 아닌 하늘을 통해 봉쇄를 뚫었듯이, 한국인 중에도 이스라엘의 것이 아닌 바다를 통해 가자지구의 봉쇄를 부수려고 한 이들이 있습니다. 시집의 마지막 시는 배를 타고 가자지구로 두 번 향했던 항해자 해초의 응답입니다. 또 소설가 김숨은 그의 많은 소설 작업이 그러하듯,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시마 자예드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시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를 썼습니다. 얄따란 연을 하늘에 띄우는 일, 돛단배를 타고 항해를 떠나는 일, 팔레스타인 사람의 이야기를 시로 써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 이 셋은 뭔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들의 시가 제게 올 때마다 저는 가끔 웃고 대개 울었습니다. 이 시를 쓰기 위해 오래 뒤척였을 시인들의 밤을 떠올리면, 더디더라도 해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제가 그랬듯,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의 독자들도, 한국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자지구 사람들도, 이 응답들을 읽으며 조금 웃고 많이 울게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시고, 높이- 멀리- 띄워주세요. “순간, 사랑을 되살려내는 천사라고 여길 수 있도록.”
책의 판매 수익 일부는 가자지구를 돕는 데 후원합니다. 부디 이 책이 아낌없이 쓰이길 바랍니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 편집자 강소영
김혜순
1979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시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 『공중의 복화술』, 인터뷰집 『김혜순의 말』, 합본 시집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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