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총성과 폭격 아래 무너지는 삶을 끝내 붙든 문제적 시선
폭력과 국경의 시대를 살아낸 자들의 문학적 증언
“유태인이 그 불쌍한 마을을 장악하기 하루 전날 밤,
당신의 생명을 거둬 가신 신은 분명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것이오.”
가산 카나파니의 중단편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가 열림원에서 복간되었다. 2006년 절판 이후 약 이십 년 만에 다시 독자 앞에 놓인 이 작품집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어설 수밖에 없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동 서사를 통해 고향 상실과 추방의 체험 그리고 그럼에도 지속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응시한다. 그러나 카나파니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탈출과 생존의 서사가 아니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삶의 기반 자체를 박탈당한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침묵의 심연이며, 그 심연 속에서도 완전히 소거되지 않는 기억과 존엄의 미세한 잔광이다. 사막이라는 극한의 지리적 조건, 검문과 통과가 교차하는 국경의 장치들, 물탱크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 갇힌 신체를 통해 카나파니는 전쟁과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며 인간의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해체하는지를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그의 문학에서 역사적 비극은 거대한 사건의 연대기적 서술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신체적 고통, 기억의 균열, 가족의 생계와 미래가 동시에 붕괴되는 가장 미세한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구체적 실체를 획득한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를 단순한 지역사의 기록에서 끌어올려, 폭력의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이라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 철학적 텍스트로 확장시킨다.
이 작품집이 오늘날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카나파니가 포착한 세계가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점령, 강제 이주와 국경의 배제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으며, 수많은 삶은 지금도 정치적 언어와 제도적 분류 속에서 익명화되고 통계로 환원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이러한 익명성의 구조를 가로지르며, 삭제된 개별 존재의 얼굴과 목소리를 복원하는 문학적 윤리를 제시한다. 이 작품집의 역사적 의의는 특정 민족사의 증언을 넘어, 폭력의 세계 속에서 인간이 기억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를 보존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동시에 이 문학의 가치는 재현의 차원을 넘어선다. 카나파니는 사건을 설명하는 대신,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침묵과 균열, 지연된 감각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드러낸다. 문학은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이 은폐한 것을 감각적으로 복원하는 인식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결국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과거의 비극을 기록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의 윤리 감각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깨우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조건을 끝까지 묻는 문학적 증언이다.

팔레스타인 역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보편과 존엄으로 이행하는 문학
“네가 쿠웨이트에 간다니 반갑구나.
네가 맨 처음 배울 것은 돈이 첫째고,
도덕은 그다음이라는 거야.”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그 문학적 지향은 한 민족의 비극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카나파니는 전쟁과 점령, 추방과 망명의 경험을 거대한 역사적 담론으로만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 폭력이 가장 깊게 스며드는 자리, 즉 이름 없는 개인의 삶과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의 인물들은 사라진 고향과 회복할 수 없는 과거,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불완전한 선택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의미와 마주한다. 이러한 서사적 방식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비극으로 한정하지 않고, ‘폭력과 상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한다. 카나파니에게 역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 삶의 가능성을 형성하는 힘이다. 그의 문학은 추방과 망명의 기록을 넘어, 파괴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의지와 기억의 힘을 탐색한다.
카나파니 문학의 중요한 성취는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그는 전쟁과 점령의 현실을 정치적 구호나 이념적 선언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거대한 역사적 폭력 아래 놓인 개인의 감정과 기억, 말해지지 못한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역사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시대의 흐름 앞에서 무력해 보이지만, 그들이 간직한 작은 기억과 감정의 순간들은 오히려 역사를 구성하는 가장 생생한 증언이 된다. 카나파니에게 문학은 현실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기록되지 못한 삶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이 작품집은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증언하는 작품을 넘어, 폭력과 상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과 존재의 의미를 지켜내는지를 탐구하는 문학적 성취로 남는다. 카나파니는 비극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연대의 가능성을 포착하며, 한 시대의 상처를 인간 보편의 질문으로 전환한다. 그의 문학은 독자에게 역사의 그늘 속에서 잊힌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오래도록 사유하게 한다.
한 시대의 비극을 압축한 거대한 서사적 성취
중편이라는 긴 호흡으로 구현된 추방과 생존의 구조
“너 혹시 모래사막에 나뒹구는 해골을 본 적 있니?”
표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카나파니 문학 세계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팔레스타인 출신 세 남자가 쿠웨이트로 향하는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동은 단순한 이주의 과정이나 더 나은 삶을 향한 탈출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국경을 넘는 행위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인 동시에, 이미 상실한 삶의 터전과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그러나 정당한 이동의 통로에서 배제된 이들은 밀입국이라는 위험한 경로를 택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카나파니는 독자를 한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극한의 조건과 마주하게 한다. 그는 이들의 실패를 개인의 판단이나 선택의 결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박탈된 인간, 구조적 폭력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의 현실을 드러낸다.
특히 작품 속 물탱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추방된 인간이 놓인 시대적 조건과 실존적 고립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밀폐된 물탱크 안에서 세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역사와 정치의 언어 속에서 지워진 수많은 존재들의 운명을 압축한다. 카나파니는 극한의 상황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비가시적인 존재로 밀려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왜 물탱크의 측면을 두드리지 않았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은 단순히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신호를 외면해온 세계를 향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타인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회와, 인간의 생명을 숫자와 조건으로 환원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물음이다.
그렇기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성을 지닌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강한 울림을 지니는 이유는, 국경과 제도의 틈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해왔는지를 되묻게 하기 때문이다. 카나파니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개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서사로 전환하며,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과 태도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결국 이 작품은 사라진 삶의 흔적을 문학의 언어로 되살려내고,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오래도록 유효한 질문으로 남는다.
개인의 기억과 상처를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얼굴
상실의 순간을 포착해낸 카나파니 단편의 미학
“행복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은 대지와 가옥과 고향을 지키다
살해당한 순교자들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팔레스타인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과 존재 조건을 깊이 있게 탐색한다. 「슬픈 오렌지의 땅」은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 기억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정체성의 근거임을 보여준다. 떠나온 땅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감각은 개인의 내면에 남은 상처이자, 망명자의 삶을 구성하는 지속적인 감정으로 작용한다. 「네가 한 마리의 말이라면」은 전통적 믿음과 사회적 관습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통해, 개인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낸다. 또한 「무덤 속의 손 하나」는 소문과 공포가 현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집단의 불안과 믿음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매」는 인간과 자연, 욕망과 생존의 관계를 통해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본능과 내면의 균열을 탐구하며, 카나파니 특유의 상징적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단편들의 진정한 성취는 역사적 비극을 개인의 삶 속에 새겨진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카나파니는 자신의 인물들을 단순히 시대의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기억하고 선택하며 자신이 처한 현실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들이다. 「움 사아드」와 「가자에서 온 편지」 역시 개인의 일상과 공동체의 현실이 맞물리는 지점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변화와 각성에 이를 수 있다는 인간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결국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단편들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역사가 한 개인의 삶과 감정, 기억에 남기는 흔적을 탐구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 카나파니는 거대한 시대의 폭력을 추상적인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한 사람의 목소리와 선택, 내면의 흔들림 속에 새겨진 현실로 형상화한다. 짧은 서사 안에 시대의 균열과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담아낸 이 작품들은, 사라진 삶과 지워진 목소리를 문학의 언어로 복원하며 독자에게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슬픈 오렌지의 땅
네가 한 마리의 말이라면
무덤 속의 손 하나
움 사아드
매
가자에서 온 편지
작품 해설―윤희환
지옥 불 같은 물탱크 속에서 방금 사람들이 죽었다. 작가가 일부러 호명한 이름을 일일이 읽고도 그들이 전부 몇 명이었는지 세기 어렵다. 여태 그들의 몸이 뜨겁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이제 막 죽은 몸과 이십 년 전에 죽은 몸과 오십 년 전에 죽은 몸이, 그리고 현실에서 나크바Nakba 이후 칠십팔 년째 그 땅에서 죽어온 몸들이 여태 뜨겁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 속에서 가산 카나파니의 화자들은 신을 향해 반복해 질문한다. 과연 신이 있는지를 물으며 어째서 그가 여기 부재하는지를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알고자 하는 사람은 알고 모르고자 하는 사람은 모르는, “왜, 왜, 왜.” 가산 카나파니의 이야기가 시작된 그 땅엔 이미 ‘왜’라는 질문이 남아 있지 않다. 물탱크 바깥에 선 우리가 순진하게 그것만을 묻는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쏟아진 이스라엘의 폭력은 추방에서 말살로 이동해왔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신을 향한 질문은 이제 마지막 남은 질문이 되어 사람인 우리 양심에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바로 이 순간에?
― 황정은 소설가
유태인이 그 불쌍한 마을을 장악하기 하루 전날 밤, 당신의 생명을 거둬 가신 신은 분명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것이오. 바로 하루 전날 말이오. 오, 신이여, 이보다 더 큰 당신의 은총이 어디 있습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서」 16~17쪽
천재가 아니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단다.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을 하면 누구나 가족에게 송금하던 것을 멈추지.
「뜨거운 태양 아래서」 56쪽
네가 쿠웨이트에 간다니 반갑구나. (……) 네가 맨 처음 배울 것은 돈이 첫째고, 도덕은 그다음이라는 거야.
「뜨거운 태양 아래서」 57쪽
150킬로미터에 달하는 우리의 이 여정이 내겐 마치, 천국 또는 지옥에 이르기 전 사람들이 건너야 한다고 알라신이 말했던 그 여정처럼 생각돼. 만일 도중에 탈락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거고, 성공하면 천국에 이르는 거지.
「뜨거운 태양 아래서」 66~67쪽
너 혹시 모래사막에 나뒹구는 해골을 본 적 있니?
「뜨거운 태양 아래서」 84쪽
네가 잘한 일은 무엇인가?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라. 내가 원하는 건 좀 더 많은 돈뿐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102쪽
왜 당신들은 물탱크의 측면을 노크하지 않았지? 왜 물탱크의 옆구리를 쾅쾅 치지 않았던 거야? 왜? 왜? 왜?
「뜨거운 태양 아래서」 124쪽
트럭이 축축한 대지 위를 헐떡거리며 달리는 동안, 먼 곳에선 작별 인사처럼 총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슬픈 오렌지의 땅」 129쪽
하느님이 진정 인간의 행복을 원하시는지 의심이 들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듣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는 사실 역시 믿을 수 없었다.
「슬픈 오렌지의 땅」 131쪽
팔레스타인에서 우리가 믿었던 하느님 역시 그곳을 떠났으며,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 하느님 역시 난민이 되셨다고 나는 확신했다.
「슬픈 오렌지의 땅」 131쪽
행복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은 대지와 가옥과 고향을 지키다 살해당한 순교자들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슬픈 오렌지의 땅」 133~134쪽
아버지는 우리가 파헤쳤던 그 무덤이 성자의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무덤의 흙모래로부터 축성을 받기 위해 새벽마다 그곳으로 가, 무덤 곁에서 기도를 바쳤다.
「무덤 속의 손 하나」 179쪽
오, 신이시여, 왜 어미들은 자신의 아들을 잃어야만 합니까?
「움 사아드(소설 발췌)」 185쪽
단지 통곡이라고 가볍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슬픔이 가자의 모든 것에 배어 있었어.
「가자에서 온 편지」 218쪽
팔레스타인 저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대변인, 기관지 『알 하다프』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36년 팔레스타인 북부의 항구 도시 아크레에서 태어나, 1948년 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레바논을 거쳐 다마스쿠스에 정착했다. 난민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다마스쿠스와 쿠웨이트에서 교사와 언론인으로 일했다. 훗날 베이루트로 옮겨가 『알 하다프』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발표하며 아랍 민족주의 운동과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중심인물로 자리했다. 추방과 상실, 저항의 경험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과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문학으로 형상화했으며, 그의 삶 자체가 팔레스타인 현대사의 축소판으로 평가받는다. 1972년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암살되었고, 이후 아프리카-아시아 작가회의로부터 ‘연꽃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에게 남은 모든 것』 『사아드 엄마』 『하이파로의 귀향』 등이 있다.
1997년 서울대학원 영문과에서 제임스 조임스James Joyce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7년 하버드-옌칭 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선정되었고, 2024년 강남대학교 교수직을 퇴임하였다. 문학, 종교, 철학 관련 논문 30여 편을 발표하였고, 역서로는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 『잔잔한 평화, 강렬한 기쁨』 『Saint Andrew Kim Daegon』이 있다. 또한, 시집 『간이역에서』 『깊은 물속에 누워 있었네』, 영시집 『Like a Fish, Like a Lizard』를 출간하였다.

1. 16,920원 펀딩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도서 1부
후원자 명단 인쇄 삽지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