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노회찬 8주기 헌정 도서
영화감독 장항준, 소설가 김탁환 추천
삶이라는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온 이야기,
한여름 매미 소리처럼 귓가에 오래 머물 아홉 편의 생애사
이 책의 주인공들은 민중음악으로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 자기 이름과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온 성소수자들, 고향을 떠나 낯선 땅과 일터에서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시대의 상처와 개인의 고단함,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노래가』는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이 지난해 펴낸 『우리들의 드라마』에 이은 두 번째 책입니다. 『우리들의 드라마』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삶들을 다시 마주하는 기록이었다면, 『우리의 노래가』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왔지만 충분히 듣지 못한 목소리들을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오래 울려 보내고자 하는 기록입니다.
책 제목은 백창우 작곡가의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가져왔습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묶은 각 부의 제목 또한 이 노래의 가사에서 길어 올렸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래는 무대 위의 노래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끝내 살아 낸 방식이자 누군가에게 닿고자 했던 절박함 모두가 노래입니다.
구술생애사는 한 사람의 삶 앞에 오래 머물며, 그가 살아 낸 시간의 무게를 함께 더듬는 일입니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시간, 부당함 앞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았던 마음,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다시 살아가기로 한 다짐을 듣는 일입니다. 그런 조심스럽고 끈질긴 시간이 쌓일 때, 권력자와 승자의 기록 뒤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도 비로소 보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평생 바라보았던 자리도 이와 멀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그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잘 들리지 않아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목소리들이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아홉 편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울림으로 번져 갑니다. 살았다는 것. 버텼다는 것. 사랑했다는 것. 잃고도 다시 걸었다는 것. 자기 몫의 고통을 넘어 누군가의 곁에 서려 했다는 것. 그 울림이 독자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 <우리의 노래가> 북펀딩 수익금의 일부는 우리 사회의 6411 ‘투명 인간’들과 함께하는 공간인 ‘노회찬의집’을 다져 갈 벽돌 기금에 기부됩니다. 기부자의 벽에 ‘북펀드 참가자’ 명의가 새겨지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의 성함은 노회찬의집 홈페이지에 올려 드립니다.

1부. 이 그늘진 땅에
“저는 노래할 때 발끝부터 기를 잡아 놓고 불러요. 몸이 북이라고 생각하죠. 발끝에 힘을 딱 줘요. 그 힘을 세게 주면 안 돼요. 아이 낳으신 분들은 알 거예요. 아무리 힘을 줘도 아이가 안 나오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에 그냥 몸이 녹초가 되면서 힘이 쫙.(웃음) 마지막에는 힘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기운이 통하는 거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진흙처럼 그 기운을 받아서 위로 소리를 토해 낸다고 생각하면서 불러요. 저는 생각보다 큰 무대에 선 적이 별로 없어요. 그냥 길바닥 무대. 나의 작은 노동이 저분들에게 용기가 된다면 감사한 거죠. 대다수는 민중가요를 모르잖아요. 모르지만 투쟁을 하는 거고, 투쟁하면서 ‘흩어지면 죽는다’(〈파업가〉) 하나 배우고. 또 내가 〈불나비〉 부르면 더 힘이 난다는데. 내가 가진 재주를 쓰임 있게 쓸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 수많은 노동자와 연대해 온 〈불나비〉 가수, 최도은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느냐고 묻는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 같은 게 있었던 거죠. 그리고 노래가 나를 끌고 가는 경우도 많아요. 나는 〈바위섬〉을 불렀기에 광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고, 〈직녀에게〉를 불렀기에 통일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했어요. 처음부터 그 노래 속에 담긴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부른 건 아니에요. ‘이건 옳은 것 같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 불렀던 거죠.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생각이 더 정리되고 깊어져요. 그렇게 노래가 나를 이끌고 간 경우가 많았던 거예요.”
― 〈바위섬〉을 부르며 그 기억까지도 짊어진 가수, 김원중
“젊은 세대가 더는 민중가요를 부르지 않고, 우리도 사라지는 순간이 올지 몰라요. 그래서 언젠가는 기억이나 기록으로만 남는 순간이 오겠죠. 민중가요나 노동가요로 호명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소리를 담은 음악은 젊은이들이 할 거예요. 우리 세대가 경험한 방식의 운동이 아니고, 우리 세대가 세상을 보면서 만들었던 노래의 형태가 아닐 뿐, 젊은이들은 자기 시대에 대해 자기 식대로 책임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
2부.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내가 샤먼이고 게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데서 살아가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봐요. 누구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그런 거예요.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열심히 땅을 싹 갈아. 그다음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그러고 이제 인테리어를 해. 그리고 이제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할 때 심취하다 보면 헛기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다시 의심해서 하고 또 하고. 믿는 거죠.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선택했으니까, 나도 그 사람을 믿고 기도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실은 어떤 신을 떠나서 인간을 믿는 거죠.“
―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성소수자 무속인, 박인
“한번은 주말에 나가서 일한 적이 있었어요. 마침 옆 팀 팀장님도 나와서, 본인 법카로 밥 사 준다고 해서 점심을 같이 나가서 먹은 거예요. 회사에서는 제 사생활이 비밀에 부쳐 있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열음아, 이제 남자 좀 만나 봐.’ 그때 저는 이미 동성 애인을 2, 3년 정도 만나 보고 있었어요. 퀴어에 대해 지금은 이른바 그 ‘사회적 합의’가 안 됐잖아요. ‘퀴어를 혐오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시민단체가 아닌 이상 어떠한 곳에서도 해 주는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국가정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다양한 존재 자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인식을 개선해 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
―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말을 건네는 퀴어 직장인, 한열음
3부. 움츠린 어깨들 다 펴겠네
“눈 오는 날 서울역에 내려서 막내를 포대기로 업고 가는데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거야. 순천은 눈이 와도 그렇게 많이 안 오잖아. 그렇게 눈 많이 온 걸 처음 봤지. 1987년에 하숙집을 시작해 여기를 거쳐 간 학생들이 족히 300명은 넘을 거야. 노량진역 건너편 대성학원 바로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는데 거기에 스티커를 붙였어. 명함처럼. 긴말 안 하고 ‘남학생 하숙’이라고만 쓰고 집 전화 적고, ‘전라도’ 딱 세 글자 써 놓으면 전화가 와. 다른 지역 엄마들이 더 좋아했어. 전라도 엄마들이 음식 잘한다고.”
― 부엌의 온기로 많은 이들의 세계를 조용히 지탱한 하숙집 주인, 정경애
“저는 원래 일어나자마자 미얀마 뉴스부터 보는데 갑자기 페이스북에 뉴스가 뜬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21세기에 쿠데타라니! 정말인가 싶었는데 다들 연락도 안 되고 미얀마 뉴스가 계속 나오고 난리가 났어요. 설마 아니겠지.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난생처음이잖아요. 그래도 미얀마 여성 세 명이랑 신촌에서 만나 기자회견 계획을 짰어요. 그렇게 빨려 들어가 쭉쭉쭉 해 온 거예요. 쿠데타 이후에 활동을 끊어 본 적이 없어요. 4, 5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이 안 나요.”
― 미얀마와 한국 사이에서 말하고 글 쓰며 연대하는 활동가, 강선우(웨노웨 흐닌 쏘)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온 지는 30년 됐어요. 한국에서 외환 위기를 겪었어요. 처음 왔을 때가 서른세 살이었어요. 저는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요. 용접하는 거랑 유압 기계 다루고, 로봇 프로그래밍하는 기계 고치는 일. 회사에 직원이 사무직 포함해서 135명 정도. 그중 이주 노동자는 17명 돼요. 저도 외국인이지만 서류상으로는 한국인이죠. 회사 정년이 2027년 12월까지예요. 이제 100세, 120세 시대잖아요. 퇴직하고 나서 먹고살기 위해 나는 버스 운전면허 따 놓으려고 해요. 왜 하고 싶냐면 내가 경기도, 안산은 어디든지 길 잘 알아요. 내비게이션도 잘되어 있고 5개 국어도 할 줄 아니까. 내가 버스 기사 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2027년 한국에서 정년을 앞둔 방글라데시 태생 안산 박씨, 박지환(하비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회식에 내가 샤워하고 가든, 옷을 바꿔 입고 가든 나는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다. 그다음부터 공장에서 입던 거 대충 입고, 샤워도 안 하고 가는 거예요. 같이 술 마시고 그 공장 사람들만의 사는 방식으로 그렇게 사는 거예요. 나는 한국에 돈 벌러 왔고, 공장에서 일하니까 (그러면 이제 공장에서) 욕도 먹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욕하고 싸우고 반말하고 때리고 차별하는 거…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 아니고, 엄청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만약 그때 20대에 만난 친구들 없었으면 나는 대한민국 사람 자체가 다 이런가 보다 했을 거예요. 한국에 살면서 원래 내 모습은 많이 잃어버렸지만, 그 친구들 없었으면 옛날 나한테 욕한 공장 아저씨처럼 맨날 욕하고, 술 마시고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문화 활동이나 이것저것도 다 포기했을 거고요.”
― ‘서남아시아 설날 축제’를 만든 이주민 문화 행사 기획자, 자한길 알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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