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로, 2013년에 비트코인 백서를 처음 읽은 뒤로 블록체인 기술을 꾸준히 공부해 왔습니다. 1판을 번역할 당시에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사내 블록체인 연구회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떠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판을 번역한 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비트코인을 둘러싼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고, '튤립 버블'이라 불리던 것이 월가의 포트폴리오에 들어갔으며, 국가 차원에서 비트코인 보유 전략을 논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직 비트코인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우연히 접했던 9페이지짜리 백서 하나에서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니, 그 역사의 초입을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1판을 작업하면서 사토시의 글을 쭉 읽어 내려갈 때 느낀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놀라울 정도로 소박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스포지에 코드를 올리고, 윈도우 XP에서 크래시 리포트를 받고, 시작 폴더 단축 아이콘이 왜 안 되는지 동료에게 물어보는 개발자. 불과 얼마 전까지 누구나 쓰던 것들이 신간 도서에 등장하는 걸 보면 이게 꽤 최근 일이라는 게 실감나는데, 그가 설계한 네트워크의 시가총액이 지금 1조 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개정증보판에는 마르티 말미, 아담 백, 웨이 다이, 할 피니, 마이크 헌과 사토시가 주고받은 이메일이 새로 실렸습니다. 사용자가 손에 꼽히던 시절, 소프트웨어 충돌 보고를 받고 리눅스 빌드를 준비하며, 누군가 비트코인으로 달러를 교환해주는 사이트를 열었다는 소식에 반가워하는 모습은 평범한 오픈 소스 개발자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지금의 비트코인이 되었다는 게 이 이메일들이 가진 묘한 매력입니다.
사토시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개정증보판 작업을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SATOSHI NAKAMOTO'를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サトし なカモと'로 적으면 글자 형태가 로마자 'HAL FINNEY'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긴 하지만, 할 피니가 사토시에게서 최초의 비트코인 트랜잭션을 받은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할 피니는 2014년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미래 기술을 믿었던 사람답게 인체 냉동 보존을 선택했습니다. 지금도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서 관리하는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안에 안치되어 있고, 보존 비용의 일부는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기부로 충당되었다고 하니 그가 초기부터 지지했던 기술이 결국 그를 지켜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에 실린 할 피니와의 이메일을 읽어보면 사토시와 별개의 인물로서 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게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