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및 문화사회학자로 서인도제도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메이카계 미국인으로서 서인도제도대학과 런던정경대학 교수를 지낸 후, 1971년부터 하버드대학 존 카울스 사회학 교수로 있다. 자유의 문화와 실천, 노예제와 민족-인종 관계, 가난과 저개발의 문화사회학, 흑인 사회의 젠더·가족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첫 학술서인 『노예제의 사회학』은 3세기에 걸친 자메이카 노예제에 대한 역사적 서술과 분석을 담아 커다란 호평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이 주제에 관한 전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후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랠프번치상·미국 사회학회 탁월한 학문 공헌상 수상), 『피의 의식: 200년 미국사를 지배한 노예제의 유산』, 『자유: 현대 세계에서의 자유』, 『문화적 매트릭스: 흑인 청소년 이해하기』(공저, 애니스필드울프 평생공로상 수상), 『혼돈의 섬: 자메이카와 탈식민지 시대의 곤경』, 『자유의 역설: 전기적 대화』(공저), 『노예화: 과거와 현재』 등을 출간했다. 헤겔상 수상을 비롯해 구겐하임 펠로십과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었으며, 자메이카 정부로부터 무스그레이브 금메달과 공로훈장을 수훈했다.
패터슨은 데이비드 리즈먼, 대니얼 벨, 탤컷 파슨스와 함께 하버드 사회학의 마지막 거장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연구가 지닌 방대한 범위와 야심은 그를 99퍼센트의 다른 사회학자들과 구분지으며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0세기 초 막스 베버가 보여준 거시적 문명 분석의 계보를 잇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르네상스 석학”이라 불리며, 역사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넘나든 그의 저작들은 “자유를 논하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겸손해져야 할 거대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청년 시절 자메이카 빈민가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소설 『시시포스의 아이들』을 써서 “카리브해의 졸라”라는 평가와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 두 권의 소설을 더 발표했다. 또한 자메이카 총리의 사회정책 및 개발 특별고문, 자메이카 교육개혁 위원회 위원장, 프리덤 하우스 이사 등을 역임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에 수많은 칼럼을 기고했는데, 독단적 사고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에세이는 종종 하계의 확고한 신념을 뒤엎곤 했다.
이 책은 자유라는 관념에 또 하나의 역사를 덧붙이려는 시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의 본질이나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를 규명하려는 철학적 담론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 문명의 가장 핵심적 가치인 자유를 추적하는 역사사회학적 탐색이다.
대개 자유를 설명하려는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의 문제를 다룬 다음 16세기와 17세기로 화려하게 도약해 근대 세계의 부상과 함께 자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2000년에 걸친 광대한 연속성의 틈은 설명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져 있다. 그러한 과정은 불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터무니없기조차 하다.
내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자유에 대한 현대적 개념과 강렬한 몰두가 고대 세계에서 이미 완전히 모든 면에서 확립되고 고대와 현대의 가치 표현 및 경험 사이에 연속적인 패턴으로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서구의 이상화 과정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자유라는 가치가 노예 상태의 경험적 함의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당연시해온 노예제 전통이 지닌 사회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려 했던 나는 역사사회학이라는 무기를 갖추고 노예제라는 이름의 사람 잡아먹는 늑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내가 계속 발견한 것은 ‘자유’라고 불리는 어린양의 발자국이었다. 서구의 과거라는 산기슭에서 그 양을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어린양은 당혹스럽고 순진하지 않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예제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는 말인가? 이에 나는 사냥감을 바꾸기로 했다. 자유의 사회역사적 뿌리를 찾고 시간과 맥락 속에서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으며, 지난 8년 동안 이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발견한 것들은 바로 이 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