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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남궁억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863년

사망: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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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황성신문 21>

남궁억

1863년(철종 14년) ~ 1939년

독립 운동가ㆍ교육자ㆍ언론인. 자는 치만(致萬), 호는 한서(翰西). 본관은 함열(咸悅). 서울 출생. 1883년(고종 20)에 영어 학교(英語學校)에 1년간 다닌 후 묄렌도르프(P.G. Von Mollendorff)의 견습생으로 있다가, 1887년 전권 대신 조민희(趙民熙)의 수행원으로 상하이에 갔다. 1893년 칠곡 부사(漆谷府使) 등을 역임. 1895년 내부 토목 국장이 되어 탑골 공원 공사를 맡았다. 그 후 흥화 학교(興化學校)의 교사로서 영문법과 국사(國史)를 가르치고, 독립 협회(獨立協會)에 가입, 1898년 독립 협회 관계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자 이해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 사장이 되어 노일(露日)의 한국 분할설(1900)과 노일 협정(1902)을 공박했다. 1905년에 성주 목사(星州牧使), 1906년 양양 군수(襄陽郡守)로 있으면서 양양에 현산 학교(峴山學校)를 설립, 이듬해 대한 협회장(大韓協會長)이 되고, 1908년 《교육월보(敎育月報)》를 간행하는 한편 이 해에 관동 학회(關東學會) 회장이 되었다. 1910년부터 배화 학당(培花學堂) 교사로 9년간 재직, 1918년 강원도 홍천(洪川)의 모곡(牟谷)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무궁화 묘포(苗圃)를 만들었으며, 1933년 무궁화와 우리나라 역사 사건으로 체포되어 복역 중 1935년 병으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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