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근처에 있는 알란디에서 바가바드 기타를 처음 접하였다.
게스트 하우스 안내원이
나를 지하실 서고로 안내하더니 갸네쉬바리 기타를 보여주었다.
갸네쉬바라는 그 지방의 시인이자 성자였다.
그 성자가 바가바드 기타 주석서를 썼는데 그 책이 갸네쉬바리 기타다.
녹음이 짙은 오쇼 아쉬람에서 그분은 청중들에게
“그대는 순수한 금입니다. 그대는 순수한 금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라는 지혜의 말을 전해주셨다.
보통의 인간으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 그 말씀은 엄청난 선물이었다.
내가 붓다라니........어쩌면.......
산타크루즈 요가 연구소에서 성자 요겐드라지를 만나 질문을 하였다.
“마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휘청이게 하는 천둥이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하다가 내면에 있는 빛의 바다로 들어갔다.
마음은 어두운 무엇이다.
그 안에 눈부신 무엇이 있다니....
너무나 놀라 그곳의 성자 고엥카 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사마디입니다. ”
나는 그때 사마디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산타크루즈 요가 연구소에서 한 외국인 연구원에게 물었다.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 어디입니까?”
“티루반나말라이의 라마나스라맘”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있는 라마나스라맘에서 그제야 난 평화를 느꼈다.
인도에서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 희귀한 아쉬람이었다.
수행은 마음이다.
힐링을 주는 소울 음식들, 초록색 허브 잎이 담긴 버터밀크, 커피,
아삭아삭하게 부수어지는 크레커 ...
오, 천상의 음식들......
그 무엇으로 보답을 할 수 있을 런 지....
공작새들이 지상과 지붕 위를 다니며 내는 지상을 떠난 소리들,
다가와 한가롭게 가까이 앉는 개들, 늘 움직이는 원숭이들...
지붕과 울타리를 타고 있는 남국의 웃는 꽃들
고요, 침묵이 넘치는 낙원이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라마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1948년생이고 라마나님은 1950년에 돌아가셨으니.....
그 즉시 나의 숙소로 가는 길목의 숙소에 나나가루라는 성자를 보내주셨다.
그 성자 분께서는 헌신자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 기회를 가졌지만
난 그때는 그분의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는 성숙한 영혼은 아니었다.
인도를 다니다보니 그 거대한 영성의 체계가 어렴풋이 들어왔다.
그것을 알고 나는 놀랐다.
이제까지 너무 안이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 생애에는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여정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뉴델리로 갔다.
이 영혼의 나라를 그냥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수첩을 뒤졌다.
하리드와르 아쇼카 로드에 있는 아라야 니야스. 파파지.
붓다가야의 미얀마 사원에 머문 적이 있었다.
룸에 있다가 떠들썩한 대화를 듣고 호기심이 일어나 나가보았다.
검은색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주위로 외국인들의 무리가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구루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구루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나도 그 구루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가는데
구루께서 허락하신다면 답을 드리겠다고 한 나그네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스승님이 머문다는 주소를 네게 보냈었다.
그래서 그 주소지로 나는 가고 있었다.
그 주소는 파파지께서 하리드와르에 오시면 묵는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은 마당에서 어망을 손질하시다가
파파지께서 계신다면서 이층을 가리키셨다.
“어디를 다녔습니까?”
“많은 곳들을 다녔지만 라마나스라맘에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저는 피곤합니다.”
“아, 그렇다면 저 아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샤워하고 쉬십시오.”
“저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피곤합니다.”
파파지께서는 놀라운 눈빛으로
“아, 그대는 마음이 아닙니다.....”
난 파파지의 자애로운 은총으로
내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마음이 없으면, 기쁨과 고통이 없으며, 세상이 없으며, 그 아무 것도 없다.
이제야 그 단어의 의미가 살아있는 모습이 되었다.
마음은 일어난 것이니
사라질 수도 있는.....
마음이 정말로 사라지자
하, 앞에 계시든 스승님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방이 사라졌다.
나의 몸이 사라졌다.
이제까지 붙들고 있던 ‘나’라는 괴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다른 차원으로 가고 있었다.
갔다.......
거기에는 눈부신 희열의 바다, 빛의 바다.....
그것만이 있었다.
찬란한 바다만이....
그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체험이 아니었다.
체험은
별개의 ‘나’가 있고
그 ‘나’가 빛을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빛만이 있었다.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나는 모른다.
시간을 아는 존재가 없었으니.......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시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자
‘나’가 느껴지고
룸이 보이고,
앞에 앉아 계시든 자애로운 스승님이 보이셨다.
이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셨을 스승님은
기쁨에 젖은 채 웃고 계셨다.
난 웃음을 머금은 채 돌아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안에 진리가 있다는 말을
경전들을 통해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고개를 갸우뚱 했을 내가
그것과 하나인 놀라운 경험을 하고 돌아오고 있었으니.....
역자는 행복을, 자유를, 진리를 찾는 삶을 산 것 같다. 어떤 직업이 그것을 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냥 그만두었다. 그래서 많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 생활도 하였다. 처음에는 스승을 예수로 한 종교였다. 나중에는 스승을 붓다로 한 종교를 알고자 하였다. 명상이 궁금하였다. 명상을 제대로 알고자 40대 초에 인도로 가게 되었다. 그곳의 수행들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이번 생애에 수행의 끝에 이르기를 포기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뉴델리로 왔다. 붓다의 나라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너무나 애석하였다. 수첩을 뒤적이다가 한분의 이름을 찾았다. 그 다음 날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하리드와르로 가고 있었다. 하리는 신 크리슈나의 다른 이름이다. 그때 나는 진리에 목이 말라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었다.
10시 30분경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파파지께서는 깨끗한 모습으로 침상에 홀로 앉아 계셨다. 나는 그분의 발 아래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디를 다녔습니까?”
“여러 곳을 다녔지만 라마나스라맘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라마나스라맘을 이 분은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곳은 남쪽의 아루나찰라 산기슭이 아니라, 북쪽의 갠지스 강가가 아닌가….
“저는 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래에 호텔이 있는데 거기로 가서 여장을 풀고 목욕하고 쉬십시오.”
그때쯤에야 마음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 너머의 무엇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몹시 피곤하였다.
“저는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피곤합니다.” 깊은 눈동자를 나에게 주시면서 “그대는 몸이 아닙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 너머에 계시는 분이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라 바로 은총이셨다. 진정한 스승을 나는 만난 것이었다.
내가 마음이 아니니 앞의 분이 사라졌다. 그 방도 사라졌다. 세상도 사라졌다. 나의 마음이 사라졌다. 나의 마음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으로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나는 바다, 황홀경의 바다만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든 스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되돌아온 나에게 한 말씀을 하시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구도의 길을 접고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