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글쓰기의 언저리를 유랑했다. 뉴스앤조이‧복음과상황‧단디뉴스 기자, 오마이뉴스에서 시민 기자로 활동했다.
대안 배움터인 샨티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쳤고, 생계를 위해 노인복지센터, 요양원, 카페, 펜션 등에서 일했다. 다채로운 이력은 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망원경이 되었다.
현재 진주여성민우회 활동가이자 편집디자이너로 책을 만들고 있다. ‘글쓰기 멘토’로 여성들의 서사를 길어올리는 ‘여성 생애사 수업’을 이끌고 있다.
서문
19호실을 찾아서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은 누가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런던 교외의 넓은 집, 지적인 남편, 네 명의 아이, 경제적 안정. 그러나 수전은 그 완벽한 삶 속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그녀는 침묵을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맨 꼭대기 빈방으로, 그다음에는 런던 도심의 허름한 호텔 19호실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찾아간 19호실은 아내도, 엄마도, 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그저 한 존재로 숨쉴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방이 필요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잘해내지 않아도 되고 그저 가만히 머물러도 좋은 자리. 그 방은 거창한 공간이 아니었다.
때로는 카페의 구석 자리였고, 오래된 사진을 들춰보는 고요한 밤이었으며, 아무도 읽지 않을 일기장의 첫 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지나온 시간과 내 곁을 스친 인연들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이 책은 세 개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인칭 여자 시점’은 결혼과 비혼의 경계, 그 언저리를 걷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비혼이라는 광야를 상상했다. 제도 안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시선은 밖을 향하곤 했다. 그러다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이름만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광야를 걷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드넓고 자유로운 만큼 때로는 거칠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도. 그래서 응원하고 싶었다. 아니, 응원해야 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오롯이 나로 존재하며 살아온 시간을 그렸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이름에서 시작해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담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했던 순간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사랑도 미움도 결국 한뿌리라는 것을.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일상에서 만난 10명의 여성들의 삶을 관찰한 기록이다. 울타리 안이든 광야 위든 자기만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우주를 지켜온 여자들. 어디에나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녀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
이 책을 건네고 싶은 이들이 있다. 결혼과 비혼 사이 어딘가를 서성이는 여자들, 타인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 나답게 살기를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 저마다의 19호실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