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공직자로 살아왔다. 늘 정해진 시간표 속에서, 누군가의 필요에 맞춰 움직이며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퇴직 후 맞은 조용한 새벽, 나는 오랜만에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세상의 일에서 물러난 자리에 남은 것은, 묵은 피로와 함께 오래된 그리움이었다. 바쁘게 달려온 세월 동안 잊고 지냈던 신앙, 그리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길을 떠났다. 이탈리아, 사도들과 성인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땅. 관광이 아니라, 기도의 순례길로. 한 걸음마다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고, 그 빈자리마다 하느님의 숨결이 스며들었다. 이 책 『이탈리아 순례 은총의길』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삶의 무게로 신앙이 흐려진 이들이 다시 마음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길 위에서 나는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