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면서 길을 나선다. 걷다 보면 앞선 길이 뒤처지고 뒤처진 길이 어느새 저만치 앞서간다. 불온한 생각들이 샛길을 만들지만, 포플러 길이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길을 다시 잡아든다. 포플러 우듬지는 반성도 뉘우침도 없이 푸른 하늘을 우러르고, 따뜻한 햇살이 응달로 눈을 치운다. 눈이 녹은 길에는 부끄러운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앞선 길과 뒤처진 길이 만나는 곳에 이정표가 보인다. 잔설의 포플러 길, 잔설에 찍혀 있는 새 발자국은 나보다 먼저 멀리 간 누군가의 흔적, 길은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을 나선다.
2024. 12. 어느 날, 송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