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있는 곳
문학청년 시절 선생님께서 에로스를 주제로 원고지 40매 분량의 소설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이 글은 그 숙제로 태어났다. 마치 고향 마을 어귀에 심은 이름도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묘목처럼.
이후 나는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쏟아 부어 글밭에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나무들은 삶에 재미를 붙일 만큼 자라났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숙제로 태어난 고향의 묘목에도 재연해보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감정까지 쏟아 부었다.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작은 묘목은 점점 자라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한 느티나무였다.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대견했다.
한층 고무된 나는 더 열심히 나무를 가꾸었다.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감정뿐만 아니라 내 삶의 조각들을 입혀나갔다. 그러나 시류에 무뎌진 감성과 보잘것없는 삶의 조각들은 유실수로도 관상수로도 면목이 없었다.
실의에 젖어 고향의 느티나무를 찾았다. 넋두리도 하고 객기도 부리고 실험도 해보았다. 그 독한 상심이 거름이 되어 어린 느티나무는 성목으로 자랐다. 제법 의젓했다.
용기를 얻고 돌아와 다시 글밭의 나무를 건사하기 시작했다. 유실수인지 관상수인지 구분하지 않고 무던히 심고 가꾸었다. 녹록치 않은 삶에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면 또다시 고향의 느티나무를 찾았다. 허한 마음이 채워질 때까지 나무와 씨름을 했다. 그리고 찾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잃을 것처럼, 기어이 다시 도전할 명분을 찾아내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이십 년 넘게 드나드는 동안 고향의 느티나무는 마을을 상징하는 정자나무가 되었다.
이제 그 정자나무에 얽힌 전설을 풀어낸다.
막연히 가고 싶은 고향이 아니라 누구나 갖고 싶은 고향을 위하여.
포근한 고향의 정령이 깃들길 기대하며
이병숙
현실과 이상.
삶의 두 축인 이 둘은 철로처럼 평행하다. 둘은 만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택할 수도 없고, 둘 다 외면할 수는 더욱 없다. 이 비정함을 극복해내는 게 삶의 숙명이다. 숙명의 본질을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삶의 주관자와 타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삶을 투쟁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의 한 조각을 놓고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적과 전투를 벌이곤 한다. 삶이 그렇듯 승리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승리는 승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패자가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욱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를 본 순간 살아있는 삶의 화석을 보았다. 고대의 인물임에도 현대인의 의식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사고와 생활방식, 신격화한 신분제도와 정치체제, 화학구조식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가계도.
아름다운 전장이었다.
정말 우리의 조상일까 싶은 낯설음에 매료되어 뿌리에 대한 애정으로 이들의 삶을 재현해 내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힘든 작업이었지만 즐거운 모험이었다. 마치 내 현실과 이상이 만난 것 같은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천여 년의 세월을 건너 새로운 전장에 선
문노 윤궁 미실 세종
이들의 운명에 승운이 깃들길 기대해 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언제부턴가 내게 글쓰기는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에 버금가는 일상이 되었다. 하다못해 종이에 넋두리라도 써대야만 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종이가 노트로 바뀌면서 일기가 되었고, 쓰기가 습관이 되자 수필을 공부하게 되었다. 수필에 전념하다가 글 쓰는 주체와 배경이 나로 한정된 쓰기로는 한계를 느껴,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소설을 공부하게 되었다. 수필가 서정범 선생님, 소설가 박영한 선생님과 임동헌 선생님. 그분들의 채찍과 당근을 받으며 나는 삶의 속내를 심마니처럼 헤집었다. 그러구러 장편소설 두 권과 단편소설집 한 권을 출간했다.
수필은 등단도 먼저 하고 작품 수도 많지만, 출간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진솔한 삶의 얘기라 애착은 크지만 남 보기에는 변변찮은 일상일 것 같아 세상에 내놓기는 낯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변변찮은 삶이나마 얼마 남지 않았다 싶으니 지나온 삶에 대해 애틋한 마음도 들고 위로도 받고 싶어졌다. 때로는 간절히 간구하고 때로는 분연히 타협하고 그러다가도 차분히 다독이며 지내온 세월이다. 돌이켜보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수십 년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걸 보면 나를 소중히 여기는 신에게 부여받은 삶이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누구든 스스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아마도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신에 의해 내보내 졌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의미 없거나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수필은 그 삶의 의미와 소중함을 찾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에 부끄럽지만 엮어보기로 했다.
등단한 지 오래되어 어떤 작품은 내용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고, 어떤 작품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내 얘기다 보니 같은 소재로 다른 얘기를 쓴 작품들도 있어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다.
일단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선별하면서 내용상으로 분류해 보았다.
등단 무렵인 사십 대에서 오십 대에 썼거나, 그때의 일화를 추려 『생의 중턱에서』로 묶었고, 유년이나 젊은 시절을 회상한 내용은 『돌아보니 이런 적도』로 엮었다. 그리고 산을 좋아하다 보니 등산을 종종 했는데 그때 산에서 있었던 일이나 깨달은 이치를 그린 작품들을 『산에서 듣다』로 묶고, 마지막으로 황혼에 가까워지면서 삶에 대한 애착과 관조를 담은 글들을 『그래도 아직은』으로 모았다.
엮고 보니 내 삶을 사랑한 기록이다. 그것도 지독한 짝사랑이다. 그토록 무정한 삶에 무던히도 매달렸다. 그래도 짝사랑 덕에 행복했다.
2025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