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 나는 고향인 당진군으로 내려왔다. 목회지를 위해 기도해 오다가 농촌 교회를 선택한 것이다. 농촌 목회는 전원생활이 아니다. 나 또한 힘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몸 하나 훌쩍 내려가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지인들은 아이를 위해 모두들 서울로 가는데 거꾸로 시골로 내려가느냐고 만류를 했다. 나 또한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들과 시골 생활이 낯선 아내를 생각하니 더욱 망설여졌다. 하지만 나마저 주저하면 누가 그 소명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내 목회철학을 누구보다도 이해해주었기에 묵묵히 이해의 눈빛을 보냈다. 아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주변 환경보다는 결국 자신이다, 시골에 가서 중·고등학교를 다녀도 인생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는 이야기로 설득했다. 어렸지만, 아들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고 따랐다.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 바름이 동리. 그곳으로 내려온 지 15년이 되었다. 강산이 바뀌는 속도가 빠른 요즈음으로 치면 세 번은 바뀌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잘 적응했다. 아들 또한 그동안 대학을 졸업했고, 어엿한 직장에도 다니고 있다. 물론 그 기간에 어찌 곡절이 없었으랴. 살아가는 데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행복과 불행도 있기에 삶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곡절의 이야기이다.
새곡교회 이야기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형화, 권력화, 금권화 되어 가는 한국 교회의 후미진 곳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한 시골교회의 이야기이기에.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교회, 주님의 복음의 소리로 꽃을 피우던 교회, 하지만 누구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였지만 아픔을 간직한 교회. 더욱 커지고, 휘황찬란해지는 교회 역사에 시골교회의 아픈 이야기도 한 줄 필요하리라.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새곡교회 이야기, 자못 뼈아픈 목회의 기억을 이렇게 쏟아내는 이유이다.
- 지은이의 <이 책을 내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