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여 부정을 부정이라 말할 수 있어야 이것이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자기 자신이 모났다는 소릴 안 들으려고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말하는 긍정주의는 위선이다. 더 무서운 탈선과 타락의 부정주의가 몸속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듣기 좋은 말이나 달콤한 글은 발전은 없고 퇴보만 있다.
계속 덮어 주려고만 하니까 그렇다. 탈바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진정한 탈바꿈과 변화와 혁신을 위해 나 자신을 버려야만 하겠다.
모든 사건과 타락은 몸속에서 움트는 야욕과 이기심이 전부가 된다.
비워 내야만 살 수가 있다.
이것 말고는 이 험난한 세파에 이겨 낼 수가 없게 된다.
이젠 더 이상 까마귀 목욕탕 가는 날은 존재하지 않길 기원하겠다.
돌고 도는 반복된 인생이란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해가 바뀌고 사라져도 끝없는 반복은 어김없이 또다시 돌아온다. 이젠 그 반복은 일상이 된다.
인간들의 인생은 선택의 길이라고 한다. 그것도 맞다. 그렇지만 더더욱 정확한 것은 반복의 길인 것 같다. 하루하루가 낙엽같이 나부끼며 나뒹굴며 공회전을 거듭한다. 한 번의 선택도 두 번의 선택도 그 당시엔 옳았어도 계속 돌고 돌아 반복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낙엽처럼 힘없이 거센 바람에 쓸려 다니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를 보는 것 같다.
변함이란 일정하지 않다. 사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규칙적으로 변한단 것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지혜가 꼭 필요해 보인다. 모두 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나이가 들어 간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후유증을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결국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몸이 그렇고 마음이 그랬다. 훗날 큰 환란을 당하기 전에 다시금 생각할 필요는 분명 있다. 반복된 인생이란 날카로운 화살을 닮았고 그게 결국 무뎌지면서 또 맥없는 낙엽 같은 시간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평소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듣고 들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가식과 허구가 판치고 있었고 결국은 상대방을 자기의 소유물 내지는 부속물로 만들기 위한 수단 도구로써 그 아름답고 숭고한 두 글자가 압살당하는 것을 계속 목격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이 사회가 엉망이 될 것은 뻔한일이다. 매스컴이든 책이든 어디든 팔로 머리 위에다 하트모양 표시만 한번하고 두 글자 한 번 크게 외치면 그 게 사랑으로 다 통해 버리고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여 카톡에 하트표시하나 해 놓으면 두 글자로 통한다. 거기에다가 두 글자라는 명분하에 길거리든 어디든 공공장소에서 지나친 애정표현을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은 두 글자가 아니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만인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행동으로 인하여 상대적 빈곤감과 서러움에 빠진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에겐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내리사랑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것은 고정불변이다. 즉 절대적 사랑이고 참된 진정한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부모는 자식이 일탈행위를 해도 감싸주고 온갖 부정행위를 하여도 감싸준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이 옳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뜻은 절대 아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그 허물을 감싸주면서 올바르게 인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랑은 부모의 사랑 내리사랑 만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전제적 제한적 사랑으로써 어떤 룰이 존재한다. 그 룰 범위에서만 좋아하고 관심을 쏟지만 그 룰에서 벗어나면 갈라선다. 이혼을 불사하는 것이다. 미혼이라면 헤어져 버린다.
하지만, 내리사랑은 미워도 한평생 꼴사납고 역겨워도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으며 희생하고 헌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내리사랑,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룰에서 벗어나도 허물을 감싸주고 아끼며 희생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내리사랑의 절반만이라도 본 받아야만 이게 바로 참된 진정한 사랑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내용 속에 여러 명에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주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이 사회는 여성들은 남성을 만나는 길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 소개, 직장동료 또 모임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소개와 직장동료라는 큰 범주와 맞물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남녀간의 만남이 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힘든 문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고 근본대책은 자기 자신이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이 내용의 여성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남성을 쟁취하기 위하여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극도로 나약한 이세상 여성들에게 용기와 패기를 심어주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았고 물론 이 경우는 남성도 포함되는 것이다. 특히 수동적인 남성들에게…
아무쪼록 이 세상에 외로운 사람들이 하루빨리 고독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고 이왕에 사랑을 하려거든 욕심을 버리고 초월적인 마음으로 상대방 이성에게도 내리사랑 부모님이 자식에게 쏟는 마음과 정성을 절반만이라도 쏟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관념을 갖추어 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되어 이 세상에 내리사랑 내리 꽃이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 내리 꽃이 활짝 피어나 내리화로, 내리화의 이름으로 이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만인에게 그 가슴에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인이 만인을 내리화의 그 마음을 지닌 채 만인이 만인을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같은 가족이라 생각하고 아끼며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염원하는 마음…
나는 우리나라가 유난히 신분차별 여성차별 등,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 이도 있고, 요즘은 여성상위 시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갑갑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여성상위인지 구체 적으로 말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렇게 주장할 뿐이다.
이 나라에서 여성이 상위인 영역은 단 하나도 없다. 상위시대라는 말은 그저 만들어낸 유행어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 죄가 아니다. 또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게 죄가 아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마치 죄인인 양, 뒷골목이나 건물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안타깝다 못해 불쌍한 느낌마저 든다.
이 많은 여성흡연자들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유는 지나가는 사람들,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자가 담배 피는 걸 보면 이상 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나라, 이 사회는 수많은 여성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 놓고 ‘여성상위’라고 말로만 하고 있다. 이 글에선 여성 흡연문제만 다루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차별들을 한 이야기에서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적으로 여성들만 위해야 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여성옹호주의자도, 여성편애주의자도 아니다. 사실 나는 특별히 여성들에게 관심이 없다. 물론 남성들에게도 관심이 없다. 남성들의 편도 아니고, 여성의 편도 아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다 같은 독립된 고유의 인격체로 보일 뿐이다. 그저 이 세상 사는 동안 모두 다 평화와 행복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글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이들은 이 내용의 본질이 남성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또, 결코 그래선 안 된다. 나의 사상과 가치관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집과 독선을 광활한 넓은 벌판에 다 내던져버리고 싶다. 그러면 정말 아름답고 선한 배려와 사랑과, 진정한 의미의 평등과 진심을 담은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억눌린 여성흡연자들의 가슴에 든 멍들이 깨끗이 씻겨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에필로그
이 글은 수도권의 교통체증 문제와 더불어 음주운전차량 문제를 한번 짚어 보고 싶었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과다진한선팅차량문제까지도 다루어 보았다.
교통체증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차 한 대 있으니까!
예외도 있지만….
그보단 심각한 것은 음주운전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포화된 알코올 섭취가 유난히 많은 이 나라에선 이 문제가 언제나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운전자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음주운전을 하게 되면 운전자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인 여러 가지 치명상이 생길 수 있으니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보고 또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들에게도 억울한 치명상을 입게 할 수도 있으니 더더욱 금지되어야 하고 관계기관도 철저한 단속이 있어야 되겠다. - 에필로그
《하얀 나방》이라는 소설은 이 사회의 단면을 표출하고 싶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 말고도 전국 어느 지역이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들을 상상을 통해 그린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나 온전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 누구나 단점을 지니고 있다. 절대적일 수가 없다.
겉으론 온전한 것처럼 행세하고 그렇게 온유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도 하고 치장을 하며 보여지고 있긴 하지만 실은 온통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이 먹구름, 흑역사에 대해 세상은 나에게 긍정이란 말로 자꾸만 강요를 이어간다. 심지어 위대한 옛사람이 남긴 고전의 내용까지 인용하여 온갖 쇼를 다 퍼붓는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가 없다. 물이 어느 정도 더러워야 물고기가 살 수가 있다.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