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마을 뒤에는 작은 산이 있습니다. 저는 그 뒷산을 참 좋아합니다.
때로는 운동 삼아, 때로는 산책 삼아, 때로는 심심해서 놀러 가기도 하지요. 그 산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아서 봄에는 산딸기를 따 먹고 가을에는 밤을 주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학교가 들어선다고 산 한 자락이 잘리고, 어느 해에는 대형 마트를 짓는다고 또 잘려 나갔습니다.
텃밭에 그늘이 진다고 커다란 나무를 죽이고, 산책로를 만들어서 해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발길들 중에는 제 발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그러더니 몇 년 전에는 산허리를 잘라서 도로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옆 동네를 가는 데 10분 정도가 빨라진대요. 땅값도 오른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찬성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정말, 우리 맘대로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저 뒷산의 나무들을 베고 도로를 만들어도 될까요? 그 속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욕심 때문에 자꾸만 작아지고 낮아지는 산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만드는 일은 모두가 어른들이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그런 자연을 하찮게 여길까?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되어도 자연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심했습니다. 자연 친화 동화를 쓰기로요. 우리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이 지구의 미래도 바뀔 거니까요.
단편집 『느티나무 괴물들』에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동물들의 이야기, 인간을 바라보는 동물들의 시선, 인간과 동물이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이야기, 백 살이 넘은 고택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랍니다.
“너희들은 조선의 미래다. 조선의 붓이고 칼이다. 지금부턴 슬퍼도 울어선 안 된다. 창흥의숙은 앞으로 수업료도 일절 받지 않을 것이고, 점심도 무료로 제공할 것이다. 내 재산이, 내 몸이 다해도 좋다. 그러니 공부하라.”
어느 날 새벽, 텔레비전을 통해 상월정을 만났습니다.
상월정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1000년 동안 공부하는 공간이었고, 그곳에 춘강 고정주 선생님이 ‘호남 신교육의 요람’이었던 창흥의숙의 전신 영학숙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월정이라는 공간과 고정주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관심을 갖게 된 창평은 알면 알수록 폭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삼지내 골목을 둘러싼 앙증맞은 돌담과 돌담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꽃들, 그 사이로 보이는 옛 가옥들은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골목 한쪽을 졸졸졸 흐르는 작은 냇물은 자연스럽게 내 속에 있는 동심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창평의 매력은 이런 외향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호남에는 삼성(三城) 삼평(三平)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곡성, 보성, 장성과 함평, 창평, 남평을 이르는 말입니다.
삼성 삼평은 임진왜란 때부터 의병들의 저항이 대단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일본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거친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왜곡되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창평도 삼평에 속하는 지역으로 일본인들이 두려워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에는 상인은 물론 일본 경찰조차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창평상회는 일본인의 자본침투를 막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등 지역민이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창평에는 유천리와 삼지내가 있습니다. 유천리는 고녹천의 종가를 비롯하여 의병에 참여했던 고씨 후손이 많이 사는 지역이고, 삼지내는 창흥의숙을 세운 고직각의 후손들이 주로 사는 지역입니다.
유천리는 나라를 지키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믿은 강한 보수의 성향을 띄었고, 삼지내는 국가의 백년대계는 젊은이들의 신교육에 달렸다 믿는 개혁의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평 사람들은 동학농민항쟁이 일어났을 때도 양반과 농민 사이에 큰 충돌이 없이 지혜롭게 극복했으며, 해방 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갈등이 심했던 때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창평은 녹천이 추구했던 보수와 직각이 추구했던 개혁의 두 노선이 큰 충돌 없이 동시에 공존했던 지역이지요.
중학교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만 나오면 부끄럽고 화가 나서 책을 덮고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창평은 상처받은 내 자존심에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책이 저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 속의 배경과 대부분 사건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직각(춘강 고정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창작된 인물임이 밝힙니다.
몇 년 전 여름휴가를 가던 길에 파도가 없는 바다를 만났어요.
새만금 간척지 개발공사로 인해 거대한 둑으로 가로막힌 바다였지요.
움직이지 않는 바다, 조용한 바다,
이제는 바다라고 부를 수 없는 바다였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해질녘이 되자 숭어가 점프를 하는 거예요.
가로막은 수문 앞에서.
그 속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었던 거예요.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하는 숭어를 보자 울컥 눈물이 나왔어요. 꼭 둑 너머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듣고 그곳이 그리워 뛰어오른 것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숭어들을 대신해 그들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로 결심했지요. 주말마다 이제는 바다가 아닌, 바다였던 그곳을 찾아갔어요.
그 결과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 『파랑게르치 날다』를 쓰게 되었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물음표
어린이 여러분은 신화를 좋아하세요?
신화는 사람들이 경외감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가꾸어온 신성한 이야기예요.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그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가치를 상징적으로 담아내지요.
저는 신화를 참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제주 신화인 『서천꽃밭 한락궁이』를 특히 좋아해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해 줄게요.
한락궁이의 부모인 사라도령과 원강아미는 서천꽃밭을 향해 가던 도중에 악마 같은 천년장자의 집에 어머니만 홀로 남아 한락궁이를 낳고, 천년장자의 종으로 살아요. 한락궁이는 그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서천꽃밭 꽃감관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서천꽃밭으로 찾아가지요. 서천꽃밭에는 환생꽃과 멸망꽃을 비롯해 신비한 꽃이 가득해요. 한락궁이는 아버지가 준 신비한 꽃을 가지고 돌아와 천년장자를 응징하고 죽은 어머니를 환생꽃으로 살려내지요. 두 사람은 서천꽃밭으로 돌아가서 아버지 사라도령과 함께 살다가 훗날 한락궁이는 아버지의 뒤를 위어 서천꽃밭 꽃감관이 된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이 세상에는 아버지 살던 곳에 아들이 사는 법이 생겨나서 대대손손 이어나가게 되었답니다.
『서천꽃밭 한락궁이』 신화를 보면 또 이런 대목이 나와요.
한락궁이가 집을 떠난 사실을 안 천년장자는 분노했다. 그는 즉시 천리동이 개와 만리동이 개를 시켜 한락궁이를 잡아 오게 했다. 하루에 천리를 가고 만 리를 가는 무서운 개였다. 천리동이 개가 천리를 훌쩍 달려 한락궁이한테 다다르니 흰 사슴을 타고 가던 한락궁이가 메밀범벅을 던져주었다. 떡을 받아먹은 천리동이 개가 어찌나 짰던지 천리 밖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한락궁이는 천리 밖으로 멀리 달아났다. 다음은 만리동이 개. 만리동이 개가 만 리를 훌쩍 달려 한락궁이 코밑에 다다르니 한락궁이가 다시 메밀범벅을 던져주었다. 떡을 먹은 개가 어찌나 짰던지 만 리 밖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한락궁이는 만 리 밖으로 멀리멀리 달아났다.
천년장자를 아버지인 줄 알고 자란 한락궁이가 친부가 서천꽃밭의 꽃감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천년장자의 무서운 개들에게 쫒겨 흰 사슴을 타고 도망간 그 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한락궁이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 정말로 그렇게 쉬웠을까?
그때 한락궁이가 길을 가는데 뽀얀 강물이 있어 무릎까지 물이 찼다. 그 물을 건너서 가다 보니 다시 노란 물이 나오는데 허리까지 물이 찼다. 그 물을 건너자 빨간 물이 나타나는데 목까지 물이 찼다. 한락궁이는 이를 악문 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물살을 헤쳐 나아갔다.
삼색강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아무나 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아무나 건널 수 없다면 누가 지킬까?
사라도령은 한락궁이를 이끌고 꽃밭으로 가서 가지각색의 꽃을 보여주었다. 꽃밭에는 신기한 꽃들이 가득했다. 사라도령은 아들에게 뼈오를꽃과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트일꽃을 꺾어 주고, 울음꽃과 웃음꽃, 선심꽃과 수레멸망악심꽃을 또 꺾어 주고, 때죽나무 회초리도 만들어 주었다. 서천꽃밭 각색 꽃을 받아든 한락궁이는 아버지를 하직하고 길을 나서 인간세상 천년장자 집으로 향했다.
웃음꽃, 울음꽃, 멸망꽃,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트일꽃 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서천꽃밭에는 또 어떤 꽃들이 있을까?
신화를 읽으면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따라와요.
이러한 물음표들이 모여 『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가 태어났어요.
신화나 설화는 이렇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있어요. 친구들도 이 책을 읽은 후에 『서천꽃밭 한락궁이』 신화를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제우스,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아르테미스……. 읽기도 어려운 이름들을 척척 외워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해요.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천지왕, 당금애기, 강림도령, 바리, 원강아미, 한락궁이를 아는지 물어봤더니, 대부분 잘 몰랐어요.
이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우리 신화의 주인공들이에요. 신화의 나라를 누비면서 흥미롭고 놀라운, 감동적인 이야기를 펼쳐내는 우리의 신들이지요.
어쩌면 우리 친구들이 잘 모르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친구들이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진 책이 많지 않거든요.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우리 신화를 재미있는 동화로 많이 쓰려고 해요.
우리 친구들도 우리 신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 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