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5년 전 김영문 선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완역하려고 하는데 글항아리에서 출판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의였다. 선생과는 이미 여러 권의 중국 인문학 서적으로 호흡을 맞추었고 『동주 열국지』도 펴냈다. 그 이후 『손자병법』 십일가주十一家注를 같이 작업하기로 돼 있었다. 나로서는 다소 의외의 제안이었다. 『정사 삼국지』는 이미 국내에 두어 종이 번역돼 있는지라 거기에 더 보태려면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배송지 주」도 같이 완역할 것이라는 말이 뒤따라 들렸다. 거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배송지라니! 『삼국지』만큼 방대한 배송지의 주석을 같이 번역한다면 확실한 차별화가 되고, 국내 『삼국지』 독서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분량이다. 기존의 『정사 삼국지』는 위·촉·오에 각각 1권씩 총 3권으로 묶어내는 적당한 분량이지만, 여기에 배송지 주가 더해지면 「위지魏志」만 4권, 「촉지蜀志」 1권, 「오지吳志」 2권으로 최소 7권 구성이 된다. 거기다가 주요 인물 가계도, 관직명, 일서逸書 해제, 지도 등을 따로 묶은 『정사 삼국지 사전』까지 전 8권의 방대한 양이 된다. 여기까진 좋다.
살짝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자 원문을 다 넣겠다는 게 역자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략 1500쪽이 늘어난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데 매머드급이 된다. 두꺼워서 양장본을 안 할 수 없고, 그렇게 내놓으면 가격이 비싸질 것은 분명했다. 20만 원이 넘어갈 텐데 이 금액을 감당할 독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고 싶다는 답변을 드렸다. 사실 「배송지 주」는 중국학 전문 출판사로서 글항아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소망을 이뤄주겠다는데 무얼 망설이겠는가.
그로부터 1년여 후, 원고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번역하고 교감한 흔적이 역력했다. 배송지의 원문이 한글로 바뀌어 있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가 인용하는 고서들은 대다수가 사라지고 없는 책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진지배주陳志裴注'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삼국지』는 곧 배송지 주가 포함된 판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짝꿍이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와 부박한 독서 문화 속에서 진지陳志는 배주裴注라는 친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인연을 되찾아 이어 붙인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연초 언론사의 출판면 특집에 『정사 삼국지』를 곧 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분량이 분량인지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작업을 하다가 멈추길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올해도 다 지나가는 12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독자 분들께 선보이게 됐다. 책을 빨리 내라고 전화로 독려해주신 독자들과 완벽한 원고를 넘겨주시고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협조해주신 김영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꼼꼼하게 교정을 봐준 태서현 편집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복잡한 본문 체제를 읽기 좋게 구현해준 디자이너들께도 감사하고, 주요 등장인물의 얼굴을 새로운 분위기로 그려준 박순철 화백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