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
: 1955년, 식민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아시아·아프리카 민족들은 인도네시아에 모여 제3세계의 미래를 선언했다. 그 회의가 열린 반둥은 세계사에 이름을 뚜렷이 새겼다. 그러나 불과 10년 뒤, 자카르타에서는 그 꿈이 참혹한 학살로 무너졌다. 반둥이 단순한 도시명을 넘어 제3세계의 희망을 상징하게 되었듯, 자카르타 또한 고유명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냉전 질서가 낳은 대량학살의 은유이자, 국제적 공모 속에서 되풀이된 제3세계의 비극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반둥 정신’이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로 확장되었듯, ‘자카르타식 해결’ 또한 전 지구로 퍼져 나갔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우리 내부의 폭력과 기억을 문학으로 증언했다면, 빈센트 베빈스의 《자카르타가 온다》는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제3세계 개입의 양상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이제 이 책과 함께, 자카르타가 지구 곳곳에 남긴 그림자를 따라가 보자. 다크투어이지만, 희망을 찾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관문이다. _ 옥창준(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냉전의 지구사》 옮긴이)
우리는 자카르타에 대해 잘 모른다. 인도네시아가 반둥 회의 개최국이었다는 정도가 교과서에서 배운 전부였다. ‘우리’의 범위 역시 미국 중심의 역사가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둥 회의 이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반공 제노사이드가 브라질로 이어졌으며, 남미에서 ‘자카르타’는 학살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저자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사회주의자 마녀로 몰린 여성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연결하는 냉전사를 기술한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성조기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2025년 한국 사회에 뒤늦게 도착한 ‘우리’의 다른 얼굴이다. 여기 ‘우리’가 경험한 또 하나의 냉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