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 하미나는 앎에 대한 갈망이 커다란 사람이다. 그에게 앎은 아름다움의 다른 표현이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부딪침과 훼손과 부서짐과 텅 빔까지를 통과하고 난 이후의, 진실과 다름이 없다. 그에게 진실은 언제고 출발이다. 하미나는 망설임 없이 출발하고 질문하며 동시에 행한다. 엄청나게 용기 있다. 나는 그의 용기에 서린 두려움이라는 뒷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그의 눈빛에서. 그의 동선에서. 그와 맞장구를 치며 나누었던 숱한 대화를 통해서. 미나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진실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진실되기 위하여 그는 때론 놀아버리고 때론 울어버리고 때론 도망치고, 때론 돌파하고 때론 빠져들고 때론 새로운 세계로 속수무책일 만큼 첨벙 뛰어들어 버린다. 그는 우선 몸을 원하는 곳에 둘 줄 알고 열렬히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안다. 자괴감과 수치심과 상처와 우울과 비참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그는 자신의 경험을 폄훼하지 않는다. 그가 항상 사랑스럽고 미덥고 강건한 이유일 것이다.
하나를 배울 때마다 그걸 열심히도 나눠왔던 하미나가 새롭게 선보이는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는 여성만이 쓸 수 있는 글쓰기다. 여성이 써야만 하는 글쓰기다. 공포 속에서 태어나는 아기와 그 아기를 받아 소중히 안아주는 산파의 경험을 동시에 한 몸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가 건네는 이 앎을 횡단하며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앎을 재편할 욕망과 용기를 얻게 되리라. 너무 오래 오염돼 있거나 왜곡돼 왔거나 무지의 그늘 아래 감추어 두었던 베일들을 비로소 벗길 용기.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는 과학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톺아보는 것에 페미니즘이 교차되길 바랐던 이들에게, 거기에 자전적 이야기가 겹쳐져 우리 삶에 더 밀착되는 한 권 책을 갈망해 온 이들에게, 과학이 종내에는 문학이 되어가는 아름다움을 갈망해 온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해갈을 선물할 것이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자들의 사회》 저자)
: 에세이가 얼마나 지적인 장르인지, 그리고 얼마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글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여성이 권력을 잡을 때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다른 페미니스트를 알게 될 때였다. 알고자 하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질문의 길을 따라갈 때보다 더 많이 배울 때가 없다. 이런 질문을 하면 이런 앎이 펼쳐지는구나. 끄덕거리면서 통과해 낸 질의응답의 여정을 그냥 읽기만 해도 되다니, 이런 호사가 있나. 내내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보았다. 이 책은 이후에 관한 책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광장 이후, 작가가 된 이후, 삶은 어디로 나아가는지에 관한. 이 책은 또한 질문의 책이다. 이렇게 많은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을 이전까지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답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예컨대 하미나는 세계의 비참 앞에서 이렇게 질문을 바꾼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로.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앎에 관한 책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보다 알게 된 지식을 통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이들의 글은 확신에 차 있다. 나는 그만큼 알지 못하므로, 그만한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므로, ‘뭐 되는’ 사람들이 쓴 그런 글을 읽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나 자신의 무지로 돌아왔다. 이 책은 다르다. 하미나는 그동안 자신을 만들어 온 지식, 관계, 경험, 느낌을 총동원해서 세계와 닿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 안다는 것은 절실하게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더 이상 스도쿠 같은 공부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앎과 삶은 원래 분리될 수 없었다. 질문의 연쇄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