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
: 김봄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대학로의 막걸리 카페 ‘두두’에서였다. 누군가를 사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하호호 호 웃고 떠들면 좋으련만, 우린 서로의 서먹함이 가시자 울기 시작했다. 저자의 전작인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 중 한 마리인 ‘아담’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키보드 앞에 앉아 글을 쓰면 밤새도록 지켜 주곤 했던 아담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골뱅이 무침 한 접시가 비워질 때쯤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김치 부침개 하나 주시는데요. 아주 얇게 부쳐주세요.” 취향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에, 하마터면 “겉은 바삭바삭하게요” 하고 덧붙여 추임새를 넣을 뻔했다.
분명히 음식에 관한 책을 썼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간 이야기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장 익숙한 향, 메밀 향을 떠올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몸에 각인되었던 그 언젠가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남편과 단둘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겨울날, 막국수를 만들기 위해 메밀을 가루로 만들고 반죽을 준비했다. 다. 기다랗고 매끈한 반죽 한 덩이를 국수틀에 넣고 면 솥에 삶아내면 일곱 그릇의 국수가 나오는데, 그날은 단 한 그릇만 나갔을 뿐이었다. 우리 부부가 먹은 걸 제외해도 남은 반죽이 많았다. 남편이 주방을 정리할 동안 나는 남겨진 반죽을 비닐에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정말 뭔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메밀 반죽을 납작하게 잘라 유산지(베이킹에 주로 쓰이는 특수한 종이)를 깔고 오븐에 넣었었다.
오븐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집안 가득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건 짙은 메밀 향이자 아이들을 키우려면 메밀 쿠키라도 만들어서 팔아야겠다는 절박함의 냄새였다. 초조함으로 오븐을 열자 뜨거운 돌덩이들이 쩍쩍 갈라진 채 줄지어 있었다. 늘 맛있는 빵과 과자가 구워지던 내 오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그 메밀 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벽돌 메밀 쿠키를 팔지는 못했지만, 그 돌덩이들은 메밀 향 하나만은 확실히 내 안에 각인시켰다.
그 때문이었을까. 메밀로 만든 막국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은 막국수도 드셨지만 올 때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오셨다. 아팠던 어린이 손님의 건강해진 모습을 보기도 했고, 결혼기념일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닌 국숫집을 찾는 가족 덕분에 감격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다. 물론 대기시간 때문에 크고 작은 언쟁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손님의 표정을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되자, 사람들은 단지 허기를 메우려고 식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거기 참 좋았어.”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참 행복했어!” 사람들은 기억을 쌓고 일생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국숫집을 찾았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만남이었다.
나는 그 만남이 좋아 사람들을 모이게 할 생각만 하며 지내왔다. 이런 진심이 손님들의 마음에 닿았던 것인지, 짙은 메밀 향은 조금씩 퍼져 메밀이 가장 신선한 계절에는 ‘햇밀막국수 축제’를 열게 되었다. 내게 막국수는 그저 하나의 메뉴가 아니라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질책을 받을 것 같다. 추천사를 쓰려다가 내 얘기만 죽 늘어놓고 말았다. 김봄 작가의 글은 늘 그렇다. 전작 때는 세상의 모든 손여사, 김여사, 박여사, 이여사 그리고 신여사(우리 엄마)를 소환하더니, 이번 책에서는 음식으로 주변의 사람을 돌아보게 만든다.
배를 부여잡고 웃다가도 때로는 먹먹해지는 만남과 헤어짐이 쉴새 없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 책을 끼고 있는 동안 늘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 오던 음식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자꾸만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난 김봄 작가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 사람들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매 끼니 차려지는 밥상처럼 내 삶 속에 굳게 자리 잡은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잊고 있었고 마음 한켠에 묻어둔 채 지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내 삶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이 저자의 모든 메뉴에 소환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기억이나 추억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포장해온 순대를 저자의 방에서 같이 먹는 상상을 하거나, 치킨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살림의 지혜를 배우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지만 분명 맛있을 김밥도 먹고 싶었다. 어머니 없는 부엌에서 아버지가 성글게 싼 김밥을 맛본 그 형제마냥 황당한 표정을 짓고 싶었다. 한번도 못 뵈었지만 이 친근한 느낌은 무엇인지. 김봄 작가의 아버지가 닭 잡으시던 활기찬 모습, 생생한 그 시절처럼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책을 덮고 나니, 몽골로 떠난 첫 장면 속 저자의 ‘내 몸을 사랑한다’는 말이 ‘내 주변에 자리잡은 사람을 사랑한다’로 읽히게 된다. 독자인 나는 어느덧 내 사람을 떠올리며 카톡을 보내고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결국엔 혀끝에 침이 고이는 책이다. 단, 살이 찔 수도 있음에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