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소설가)
: 정교하고 치밀하다. 잘 숙성된 문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 이 소설은 어긋난 시간, 잘못된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세상을 떠난 왕년의 미국 레슬링 스타가 인디언 전사의 마스크페인팅을 하고 수영복 팬티 차림으로 이태원의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황당한 첫 장면은 이 소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극적인 부활의 시나리오 안에 있다고 믿는 시대착오적 인물들의 허세 가득한 몸짓은 우스꽝스럽고 슬프다. 키치와 패러디, 위트와 풍자가 뒤섞인 능청스러운 문장에는 이상한 비애감이 있다. 그런 가운데 이십 년째 낡은 게스트하우스 프런트를 반백수처럼 지키고 있는 주인공의 뒤늦은 자기 발견의 서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이 소설의 의뭉스러운 ‘다르게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죽음들.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소설에 가면이 필요했던 최종적인 이유일 테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짠내나는 ‘덕후’의 세계를 이토록 오밀조밀하게 재현한 소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쇼는 없다’는 왕따 경험자의 트라우마 극복기를 뻔한 성장 서사로 치환하지 않는 노련함과 유연함이 돋보인다. 문학은 오랜 시간 주변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들의 무릎이 깨지는 아픔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지 않겠다.
양진채 (소설가)
: 이상하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 소설이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전설의 스타를 모아 레슬링경기를 펼치는 황당할 수 있는 이 소설은 구체적 설득력과 재치, 재미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종국에는 소설 속 인물들과 어깨 걸고 ‘We Are the World’ 노래라도 부르고 싶게 한다. 게다가 공간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 이태원이다. 펼쳐지는 레슬링 경기가 그냥 경기로만 다가오지 않는 그 공간에서 통쾌하고, 따뜻하고, 질서정연한 난장판처럼 펼쳐지는 뜨거운 함성은 작가의 다음 소설을 제일 먼저 사 읽고 싶은 독자가 되게 한다.
김의경 (소설가)
: 이미 죽은 프로레슬러 워리어가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온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작가가 공들여 설계한 이야기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김혜나 (소설가)
: 프로레슬러로 분한 작가가 "여기는 내가 만든 링이야.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며 손짓하고, 그의 손짓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가고 만다. 비현실 같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쇼는 극명한 현실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그가 만든 쇼에서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점점 더 빠져들고 마는 마법같은 순간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일 년에 단 하루,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지는 '오늘밤' 쇼에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