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의 고전'새로운 학문'이라는 말은 사실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학문이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만이 아니라 역사학처럼 지나간 과거, 즉 '헌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역사학에서 남김 없이 밝혀진 내용을 진부하게 되풀이하는 것은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일 수 없다. 같은 시대,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史實)들을 밝혀 내고 새로운 해석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참된 역사학이다. 그런 점에서 참된 역사학은 남들이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의문시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세는 사실 역사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태도와 방법이다. 의문이 없으면 학문의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문의 근본이 당연시된 것을 의문시하는 데 있다면, 역사학보다 그 근본에 더 충실한 학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학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된 지금, 우리는 인류 공통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나아가 우리는 그 공통의 가치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도 보편적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살인은 나쁜 행위라는 믿음,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이 그런 것들이다.
범죄학자가 아니더라도 살인은 언제 어디서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안다. 또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시대에서든 인간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당연할까? 멕시코에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스텍 인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으나 그것을 결코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 않았다(심지어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콰키우틀 족은 애써 모은 자신의 재산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 버림으로써 사회적 위신을 자랑했다. 그런 행위들을 비도덕적이며 비합리적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걸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갈증을 끄는 알약을 파는 상인이 그 약을 먹으면 일 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다고 말하자, "나 같으면 그 53분 동안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가겠어." 하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의 생각은 과연 어리석은 것일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도덕이나,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가치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른 상대적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를 기본 전제로 하는 학문이 인류학이며, 그 인류학의 고전이 바로 1934년에 출간된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문화의 유형(Patterns of Culture)>이다.
대기가 만성하기까지
역사학은 역사 시대만을 다루지만 인류학은 역사 시대는 물론 까마득한 인...
인류학의 고전'새로운 학문'이라는 말은 사실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학문이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만이 아니라 역사학처럼 지나간 과거, 즉 '헌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역사학에서 남김 없이 밝혀진 내용을 진부하게 되풀이하는 것은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일 수 없다. 같은 시대,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史實)들을 밝혀 내고 새로운 해석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참된 역사학이다. 그런 점에서 참된 역사학은 남들이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의문시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세는 사실 역사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태도와 방법이다. 의문이 없으면 학문의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문의 근본이 당연시된 것을 의문시하는 데 있다면, 역사학보다 그 근본에 더 충실한 학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학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된 지금, 우리는 인류 공통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나아가 우리는 그 공통의 가치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도 보편적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살인은 나쁜 행위라는 믿음,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이 그런 것들이다.
범죄학자가 아니더라도 살인은 언제 어디서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안다. 또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시대에서든 인간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당연할까? 멕시코에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스텍 인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으나 그것을 결코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 않았다(심지어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콰키우틀 족은 애써 모은 자신의 재산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 버림으로써 사회적 위신을 자랑했다. 그런 행위들을 비도덕적이며 비합리적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걸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갈증을 끄는 알약을 파는 상인이 그 약을 먹으면 일 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다고 말하자, "나 같으면 그 53분 동안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가겠어." 하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의 생각은 과연 어리석은 것일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도덕이나,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가치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른 상대적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를 기본 전제로 하는 학문이 인류학이며, 그 인류학의 고전이 바로 1934년에 출간된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문화의 유형(Patterns of Culture)>이다.
대기가 만성하기까지
역사학은 역사 시대만을 다루지만 인류학은 역사 시대는 물론 까마득한 인류의 과거 선사 시대까지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막상 인류학의 탄생은 역사학보다 수천 년이나 뒤늦은 19세기의 일이었다(사실 인류학의 발전은 19세기에 대규모로 자행된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침탈에 힘입은 바 컸다. 산업 혁명이 가져다 준 경제적 부를 이용하여 유럽 인들은 원시 부족의 토속 문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당시에는 부족 유물의 수집이 귀족적인 취미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세기 벽두에 대학을 들어갈 나이였던 베네딕트에게 인류학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흥 학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류학과 무관한 배서 대학 영문과에 진학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던 베네딕트가 인류학에 몰두하게 된 것은 나이 서른이 넘은 때였다.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1919년 만학의 꿈을 불태우고자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미국 인류학의 거물인 프란츠 보아스 교수를 만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 주제로 삼게 된다.
이것은 베네딕트 자신의 개인적 삶은 물론 이후 세계 인류학계를 뒤바꿔 놓은 중요한 계기였다. 그때부터 10여 년간 베네딕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의 연구에 몰두한 결과 1934년 <문화의 유형>을 내놓게 되는데, 그녀의 첫 저작인 이 책은 이후 인류학의 고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계속해서 1946년 그녀는 일본 문화를 탁월하게 분석한 <국화와 칼>을 썼다. 대중적으로, 또 우리 나라에 널리 알려진 책은 <국화와 칼>이지만, 학문적으로, 또 인류학적으로 훨씬 중요한 책은 <문화의 유형>이다.
보편성이라는 환상
<문화의 유형>은 북아메리카의 푸에블로 족과 콰키우틀 족, 멜라네시아 도부 족의 세 가지 문화를 비교 분석하는 내용의 책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인류학의 고전이라면 인류학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 학문일까? 지금은 실종되어 버린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태평양 외딴 섬의 문화를 이제 우리가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먼저 베네딕트의 학문적 자세를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문명의 범세계적인 문화 전파는 과거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이고 배타적이어 서 서구인들은 다른 민족들의 문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우리[서구]는 우리의 문화 에 보편성을 부여했으며, 이 보편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포기하고 그것을 필연적이며 불가결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전세계는 서구의 정치, 경제, 문화가 지배하게 되었다. 신세계를 처음 접한 서구인들은 낯선 문화를 그냥 낯설다고 인정하고 넘어간 게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에 비추어서 재단하고 비판했다.
남의 것을 비판하려면 자기 것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어야 한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만이 보편적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베네딕트는 그런 서구인의 '당연시된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서구인들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서구 문화는 전혀 보편적이 아니다.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에서는 그 점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문화를 다루는 인류학에서는 금세 알 수 있다. 문화는 대단히 다양하다.
문화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서 나오는 관습과 가치관이기 때문에(베네딕트는 "인류학은 관습의 과학"이라고 규정한다) 생활 조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유럽 평원에서의 삶과 아마존 열대우림에서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첫 번째 사례로 등장하는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인디언 사회는 여성이 생활의 중심인 모계 사회이며 종교와 주술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남자의 의무는 서구나 우리 나라 사회처럼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아니라, 각 가정의 신성한 제사용 물건들(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 때 사용하는 가면이다)을 잘 관리하는 일이다.
물론 그들도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하지만, 그 목적은 '잘 살아 보세'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소유의 가면을 주문하고 제사 의식을 배우고 제사 의식 때 부족의 가면신들을 접대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멜라네시아의 도부 족은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사악하고 교활한 부족이다. 이 사회에서 화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조개껍질인데, 도부 족은 자기 집의 조개껍질을 내주겠다는 약속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여러 개의 조개껍질을 얻어 내고는 그 약속을 어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이용하여 신용 사기를 친 셈이다. 하지만 그들 사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식으로 살아 가므로 결국 득실은 상쇄되어 버린다. 이러한 교역 행위를 그들은 와부와부라고 부르는데, 도부 족의 사회에서는 이 와부와부를 잘 하는 것을 대단한 능력과 업적으로 여긴다.
가치의 상대성
서구인의 가치관으로 보면 1년 내내 제사 의식에만 열중하는 푸에블로 족은 어리석은 부족이고, 와부와부를 무용담처럼 여기는 도부 족은 사악한 부족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 사회가 수백 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을까?
푸에블로 족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개인적인 권위는 그들이 가장 경멸 하는 특징이다. 권력이나 지식을 갈망하는 자, 그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주변의 비난을 받고, 나아가 주술로 박해를 당하기 십상이다. …… 이상적인 인간은 남을 지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이웃 사람들의 구설수에 한 번도 오르지 않는, 위엄 있고 사근사근한 사람이다.
아무리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싸움을 하면 불리해진다. 예컨대 어떤 시합에서도 한 사람이 계속 이기면 그는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외된다. 그들은 승자가 자주 바뀔 수 있는 게임을 좋아한다. 따라서 어떤 걸출한 선수가 나오면 그 경기는 이미 망친 경기이다.
도부 족이 무정부 상태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실과 가장 어긋나는 견해이다. 도부의 사 회 조직은 여러 개의 동심원처럼 짜여 있고 그 각각의 원 안에서 전통적인 적대관계가 용인되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 서구 문화의 보편성이란 실상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그 생성 과정도 자연스러운 것일 뿐더러 해당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따라서 그 사회의 조건과 구성원들이 다르면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베네딕트가 강조하는,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다양성이다. 그 점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 주는 사례는 베네딕트가 세 번째로 들고 있는 콰키우틀 족이다.
북아메리카 북서 해안, 지금의 캐나다 뱅쿠버에 살았던 콰키우틀 족은 포틀래치라는 독특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 포틀래치란 일종의 선물 파티지만 여기서 말하는 선물은 여느 선물과는 다르다. 이 부족은 마을의 수장들 간에 재산을 건 싸움을 벌인다. 한쪽이 다른 쪽에게 선물을 하면 다른 쪽은 반드시 그 이상의 선물로 보답해야 위신이 선다. 심지어 한쪽이 자신의 재산(재산은 주로 담요이며,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재산은 구리판이다)을 파괴하면, 다른 쪽도 그 이상의 자기 재산을 파괴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콰키우틀 족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명예이다. 명예를 얻고 치욕을 면하기 위해 그들은 재산을 가지고 전쟁을 벌인다. "우리는 무기로 싸우지 않고 재산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베네딕트는 이것을 가리켜 '우리들 현대의 경제 구조에 대한 하나의 풍자'로 해석한다. 그들은 재산을 총동원하여 명예를 얻지만, 그것은 아무런 특권도 따르지 않는 직함뿐인 명예이다. 서구인들은 그 점 때문에 어리석다고 비난하지만, 콰키우틀 족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런 무모한(?)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문화의 상대성
우리는 흔히 문화적으로 앞섰다느니 뒤처졌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만, 문화에는 선진이나 후진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모든 민족, 모든 부족의 문화는 각기 나름대로 고유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에서는 하나의 문화가 제멋대로 다른 문화를 파괴하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16세기 초반 에스파냐의 하급 무관 코르테스는 겨우 600명의 병력만으로 멕시코의 아스텍을 정복하고 무참하게 유린했다. 에스파냐 인들은 이교도 문명을 야만으로 규정하면서도 막상 자신들은 황금으로 된 수많은 아스텍 유물들을 금덩이로 녹여 본국으로 송환하는 야만 행위를 저질렀다. 아스텍 문화에서 전쟁은 제물로 쓸 포로를 잡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살상을 목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에스파냐 군대는 게임의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미션 인디언들은 모든 전쟁을 똑같은 것으로 본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전쟁이라는 관념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조차 없었다. …… 우리가 도덕적 정열로 써 몸바쳐 싸우는 위대한 전쟁도 그들의 눈에는 뒷골목의 패싸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위대한 전쟁과 뒷골목의 패싸움을 구별해 주는 '문화의 유형'이 없었던 것이다.
서구인들은, 모든 전쟁은 반사회적인 것임을 잘 알고 그렇게 가르치면서도 실상 자신들의 정복 전쟁은 미화한다. 이들에 대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대답은 매우 소박하다. "옛날에는 수렵터나 어장에 관한 싸움은 없었다. 그때에는 법률도 없었지만 모두 올바른 일만 했다." 베네딕트가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만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인류학에 관심을 지니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지나치게 서구의 관점으로만 경도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베네딕트는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현대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
남경태(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