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한 50주년 맨부커상 수상작. 일인칭 화자인 ‘나’는 십남매 중 ‘가운데아이’로 걸어가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열여덟살 여자다. 여느 날처럼 책을 읽으며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흰 승합차를 세우고 나의 가족을 아는 척하며 말을 건넨다. 사람들이 ‘밀크맨’(우유배달부)이라 부르는 그 남자는 마흔한살 유부남이자 무장독립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로서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길 하나를 두고 ‘길 이쪽’(국가 반대자=가톨릭교도=북아일랜드 분리독립파=친아일랜드파)과 ‘길 저쪽’(국가 수호자=개신교도=친영국파)이 대립하며 폭발과 총격이 일상화된 마을에서, 저항군의 핵심 간부라는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일상은 손톱으로 신경을 긁는 듯 은밀하고 불쾌한 긴장에 휩싸인다.
밀크맨...9
옮긴이의 말...493
첫문장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날이었다.
: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 북아일랜드와 당시의 우리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포개진다. 정치적 논의만이 무성해 일상의 소소함을 추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페미니즘, 소수자 보호, 성적 정체성 같은 말들은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못했다.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는 법’을 모르므로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주인공과 겹쳐 보이는 인물도 떠오른다. 소설을 읽으며 아득해지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반복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이곳의 독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이다.
: 천천히 걸으며 책을 읽는 것과 저수지 가장자리를 힘껏 달리는 것을 좋아하던 열여덟살 여성이 어떻게 포식자의 목표물이 되었는지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은 괴로운 몰입이었다. 우리는 이제 안다. 독립투사도 민주투사도 여성에게는 가해자일 수 있음을. 전체주의적 공동체는 여성을 제물로, 소비재로 삼음을. 용맹한 영웅의 추악한 부분을 담합하여 파묻는 문화를. 위력의 작동방식을. 이 길고 깊이 찌르고 들어오는 소설은 지금이라도 폭력을 더 정교히 이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왜 강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폭력에도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아프게 짚어준다. 그것을 해내야 우리는 가까스로 어스름에서 빛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밀크맨』을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의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피할 수 없는 억압 속의 선택을 과연 자발적 선택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자발적 선택이라고 믿는 것 중에서 진짜 자발적 선택은 몇이나 될까. 극한의 디스토피아적 설정 속에서, 『밀크맨』은 오히려 내면의 현실을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나를 위협하는 것, 내가 도망가거나 타협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억압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하는 소설. 『밀크맨』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어쩌면 증오도 폭력도 아닌 진짜 사랑, 진실한 삶일 수 있다는 서늘한 통찰을 보여준다. 매력적인 화자가 이끄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충격에 가까운 특별한 독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이 작품은 하나의 점(點)에서 역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려한 문장은 조물주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당사자의 체현과 횡단, 우회, 유희로 교직되어 있다. 가족, 공동체, 국가의 원시성을 정확히 인식한 타자의 시선은 우리를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흥분시킨다. 서사란 무엇인가를 젠더의 관점에서 증명한 작품!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문장의 구조, 내용 모두 완벽하다. 고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와! 이것은 내가 찾던 해독제 소설이다.
조잡한 성적 추문, 이웃의 이러쿵저러쿵 이래라저래라 압력, 정치적 폭력 같은 사회적 독약에 중독되지 않은 똑똑하고 호감 가는 일인칭 여성 주인공은 돌아버리지도, 맛이 가지도 않고 시종일관 제정신이다. 그의 ‘제정신’이 그를 그답게 만들고 잊을 수 없는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 소설은 하도 기가 막힌 꼴을 많이 보고 당해서 말문이 막힌 사람들에게 특히 강력한 해독작용을 발휘할 것이다. 누군가 제정신인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 쉴 맛이 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특별히 아름답다. 모든 좋은 변화는 ‘부드러움’과 관련이 있다. 끝 문장이 어찌나 부드럽게 다가오는지 미쳐버리기 직전의 세상에서 달콤할 지경이다.
: 아일랜드의 문학적 전통을 이으면서도 이 소설만의 독창적 에너지와 목소리가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다른 많은 시대, 중세의 마녀사냥부터 스탈린의 러시아,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최근의 미투운동까지 떠오른다. 초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모든 요소가 진실에 닿아 있다.
: 대단한 성취다. ‘복잡하다’ ‘난해하다’ ‘기이하다’는 서평들에 기대지 말고 직접 이 책을 읽고 책 속에 빠져보라. 난해함은 오직 빡빡한 문장 속의 신선한 목소리와 스타일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 이 소설이 정보와 서사를 나르는 방식은 그 어떤 작품의 형식과도 같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북아일랜드를 다루는 소설이 ‘쉽게’ 읽혀서는 안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부정직한 책이고 실패작일 것이다. 거기엔 싸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름 없는 나라의 이름 없는 도시에서 우리의 화자 가운데딸은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타인들의 욕망과 맞서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올해의 가장 힘들었던, 그러나 가장 보람 있었던 책. 왜 이런 놀라운 소설을 두고 얌전을 빼겠는가? 거기 당신들, 무언가 낯설고 복잡한 것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이라면 『밀크맨』은 바로 당신들을 위한 책이다. 또한 ‘지금’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4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밀크맨』은 테러리즘부터 성폭력까지, 화해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우리 시대의 맹목적 분열에 대한 불안을 진동시킨다.
: “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사뮈엘 베케트는 썼다. 애나 번스의 강렬하고 실험적인 세번째 소설은 이 영원히 생기를 띠는 관념에 변주곡을 더한다. 익살맞게 비틀린 산문 스타일은 어떤 독자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성폭력과 부족주의에 관한 기민한 관찰이 현재에 말을 걸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이 소설을 남자가 썼어도 너무 어렵다는 이런 식의 비판을 받았을까? 『밀크맨』을 향한 비판적 반응은 그간 여성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수준을 낮추라며 일생 동안 알게 모르게 들어온 충고들과 너무나 유사하다. 남자들과 남자들이 쓴 ‘어려운’ 책들은 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
: 처음부터 숨 가쁘고 정신없고 장대한 물살로 터져 한순간도 주춤하지 않고 쏟아진다. 애나 번스의 정신없는 의식의 흐름 기술을 따라간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화자의 목소리를 자신감 있게 재현했고 크고 작은 정치적 상황의 결을 훌륭하게 포착했다. 북아일랜드의 사회적 풍경을 예리하고 절묘하게 표현했으나 그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블랙 유머를 곁들인 성장소설인 한편 강간문화와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결정적으로 그려냈다. 억눌리지 않은 분노가 담긴 책으로, 그렇기 때문에 강력하며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산다. 《페루에서 온 신사》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라라와 태양》 《상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천 척의 배》 등의 책을 옮겼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 《돌봄과 작업》(공저) 등이 있다.
역자후기
억압과 폭력, 희망의 가능성에 대한 어떻게 보면 익숙한 이야기를 진부함이라고는 없이 전달할 수 있었던 놀라운 힘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강력한 서사의 목소리와 결합시켜서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를 저항이자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으로 만들어버린 독특한 솜씨에서 나온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화자의 억눌린 사고 구조 안에서 생각하게 되고 억눌렸기 때문에 차마 멈추지 못하고 한없이 이어가는 목소리를 따라가며 숨이 답답해진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는 물 건너 나라의 과거를 관망한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스스로 살았다고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