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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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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스무살의 나이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이들의 고민과 방황, 90년대를 대표하는 후일담 문학, 결혼을 둘러싼 여성문제와 가족문제, 그리고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까지 다양한 작품세계와 주제의식의 확장으로 우리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져온 작가 김인숙의 소설집. 발표 당시부터 호평을 받았던 단편 7편을 수록하였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영혼과 육신에 말이 되지 못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 살아가는 기형적인 삶을 한층 웅숭깊은 연민과 성찰로 보듬는 작가의 시선이 눈에 띈다. 상처와 그로 인해 더욱 깊어진 존재의 심연을, 결코 따뜻하지만은 않은 현대적 가정과 인간관계의 다양한 층위를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으로 담아냈다.

젊은시절 원양어선을 탔던, 표제작 '안녕, 엘레나'의 아버지는 자신이 부재한 동안의 어머니의 행실을 의심해 폭력을 일삼고, 결국 이혼한다. 주인공 윤소망은 몇달간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에게 원양어선을 타던 시절의 아버지가 낳았다는 이복동생 엘레나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친구는 각지를 돌면서 만나는 모든 엘레나들과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전송해온다.

안녕, 엘레나
숨-악몽
어느 찬란한 오후
조동옥, 파비안느
그날
현기증
산너머 남촌에는

해설·정여울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 김인숙의 소설을 읽다보면 속절없이 눈가가 젖어오는 일이 종종 있다. 젖은 눈가를 비비다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해맑게 웃고 있는 김인숙의 초상이 가깝게 다가온다.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볼 수 있었던, 환하면서 고요한 그 웃음이다. 김인숙을 만나면 늘 나를 종종 울리는 김인숙의 ‘소설’을 응대해야 할지, 아니면 소녀처럼 환히 웃고 있는 ‘일상 속의 김인숙’을 응대해야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게 된다. 피에 젖은 상실과 그것을 넘어 가려는 고요한 긍정 사이에 김인숙의 소설이 그리는 초월적 꿈이 있다. 그것은 갈구이고 그리움이다. 그의 소설로 인해 내 눈이 젖는 것은 그러므로, 이야기에 내장된 끔직한 상실과 상처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 어쩌면 소설에서부터 소설 바깥으로까지 아득히 뻗어나온 그리움 때문이다. 존재가 가진 결핍감의 원형을 이 정도의 품격으로, 섬세하면서도 클래식한 소설미학을 견지하며 그려내는 작가는 기실 한국문단에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09년 10월 10일자
 - 한겨레 신문 2009년 10월 10일 잠깐 독서

수상 :2012년 황순원문학상, 2010년 동인문학상, 2009년 제비꽃서민소설상, 2006년 대산문학상, 2005년 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 이수문학상), 2003년 이상문학상, 2000년 현대문학상, 1995년 한국일보문학상
최근작 :<자작나무 숲>,<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물속의 입> … 총 76종 (모두보기)
소개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칼날과 사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물속의 입』, 장편소설 『벚꽃의 우주』 『소현』 『모든 빛깔들의 밤』 『더 게임』 등이 있다. 역사 에세이 『제국의 뒷길을 걷다』 『1만 1천 권의 조선』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인숙 (지은이)의 말
집 안에 화분이 하나 있다. 몇년 전에 화분이 처음 집으로 올 때는 이름표가 꽂혀 있었다. 외우기 어려운 꽃이름이 아니라고 여겨 얼마 후 그 이름표를 빼내버렸는데, 쉽게 기억해 잊어버리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이름을 지금은 잊어버렸다. 내 허리에도 키가 미치지 않을 만큼 작은 나무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화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으니 무엇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 저것을 나무라 불러도 좋은지, 화초라 불러야 하는지, 턱없이도 꽃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몇년 동안 꽃을 피워본 적이 없으니, 꽃이라 부르면 안될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큰오빠의 거래처 중에 꽃과 나무를 파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오빠는 박스를 납품하는 날 크고 작은 화분들을 얻어와 베란다에 늘어놓고 동생들을 기다렸다. 동생들은 오빠의 집에 가서 오만가지 꽃들을 가져왔다. 주로 꽃잎이 활짝 핀 작은 꽃들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내 좁은 집 안이 꽃으로 활짝 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화초를 잘 가꾸는 내 어머니와는 달리, 그리고 역시 화초를 좋아하는 내 오빠와는 달리, 나는 그쪽으로 영 소질이 없었다. 물을 넉넉히 주면 늘어져 죽고, 물을 아껴 주면 말라 죽었다. 며칠이면 그냥 끝장이었다. 꽃을 받아올 때의 화사한 기쁨이 큰 만큼, 죽은 꽃을 내다버리는 기분도 만만치 않게 고약했다. 덜 죽은 꽃을 내다버리는 것이 죄라 여겨져, 꽃은 집 안에서 다 죽을 때까지 말라비틀어졌다. 살리려고 기를 쓰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내다버려도 죄스럽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화분, 뭐라 이름불러야 할지 모르는, 나무인지 무엇인지가 내 집 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다. 놀랍게도 저것은 물을 안 줘도 살고, 물을 줘도 산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바라봐도 살아 있고,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에 깜짝 놀라 한 바가지 물을 쏟아부어줘도 물 먹기 전이나 달라지는 것도 없다. 기억이 맞다면, 집에 온 후로 자라지도 않았고 잎을 떨군 적도 없다. 그래서 가끔 툭툭 건드려본다. 너 살아 있는 건 맞니? 물어보는 심정이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자꾸 그 화분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미안해진다. 그것도 아주 많이 미안하다.
같은 집에서, 우리는 너무 무심하구나.

“말이 길어지면 허접한 법이네”라고, 이 책에 실린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말했었다. “마음으로 안되면 다행히 말이란 게 있으니, 말로써 용서한다 해라”라고 또다른 주인공을 통해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편을 쓸 때는 알지 못했는데, 모아보니 보이는 것이 있다. 시간이다. 시간 속에서, 내가 놓지 못하고 있는 말들이다. 놓지 못하되 어째 허접스러운 것 같고, 미련이 남는 말들이다. 간결해지기를 바랐으나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가능한 소망이겠으나, 말은 사라지고 글만 남을 수 있기를 꿈꾸기도 했었다. 말도 사라지고 글도 사라지기를 바라지는 못했으니, 아직 도에 이르지는 못했거니와 도를 꿈꾸지도 못하는 것이다. 농담이다. 도라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 나무에게도 무심한 나는, 무엇에는 무심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절대로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다행인 것은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또 쓰는 모양이다. 혹은 또 중얼중얼 말하거나.
감사해야 할 사람은 많다. 감사해야 할 꽃과 나무, 흙과 물, 바람과 하늘, 그리고 기억 들도 많다. 그러나 줄여야겠다. 이것이 고작 나의 간결함이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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