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나 브랑키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노래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페루지아의 음악원으로 옮겼으며 1998년 '카르멘'의 미카엘라 역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미카엘라를 부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경력 초기에는 리릭소프라노였으나 점점 무게가 더해지면서 지금은 '아이다', '나비부인', '토스카', '운명의 힘'을 잘 부르는 스핀토 소프라노로 변신해 있다.
'운명의 힘'은 오페라로도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그랬는지, 우연의 연속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상트페체르부르크 초연 이후 이탈리아에서 공연하는 것을 망설였다. 수년 후 드디어 라 스칼라에서 공연을 준비했을 때 원래 대본작가가 건강문제로 쓰러지는 바람에 기슬란초니란 인물이 대본 수정을 맡는다. 바로 '아이다'의 대본을 쓰게 된 인물이다. 특히 오늘날 연주회에서 가장 널리 연주되는 이 오페라의 서곡은 1869년 개정판에서 확대되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초연 당시에는 비교적 단순한 곡이었다.
파바로티와 프레니의 고향 모데나에서 공연된 운명적 비극의 오페라
'운명의 힘'은 베르디 중기의 걸작이다. 러시아 황실가극장의 의뢰로 작곡되어 그곳에서 초연되었다는 진기한 기록도 갖고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답게 베르디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음산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데, 세 남녀의 인생을 비극으로 내모는 운명의 잔인한 힘을 그려낸다. 그 운명은 모두 우연한 총기 오발 사고, 마주침, 우정에서 비롯된다.
제목의 의미를 풀어쓴다면 '잔혹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할까? 파바로티와 미렐라 프레니의 고향 모데나의 시립 가극장의 2006년 1월 실황인데, 주목할 대상은 단연 레오노라 역의 수잔나 브란키니다. 외모로 볼 때 흑인의 피가 섞였지만 브란키니는 로마 태생의 소프라노다. 어두운 음색에서 비롯되는 극적인 기운이 일품이며 대단히 섬세한 피아니시모가 표현력을 극대화시킨다.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동생 레오노라와 그 애인을 추적하는 돈 카를로 역의 마르코 디 펠리체는 캐릭터에 잘 부합하며, 수도원장 역의 파올로 바탈리아는 종교성 그윽한 음성으로 레오노라가 수도원에 들어가는 2막 2장에서 지극히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기 위해 설정된 프레치오실라 역은 2007년 11월 서울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플로라를 불렀던 티치아나 카라로가 맡았다. 연출과 무대는 비교적 전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