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호 (『시사IN』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 이 책은 작은 것 속에서 세계를, 침묵 속에서 더 깊은 메시지를 찾아나간다.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와 인물에 주목해 호기심의 별자리를 잇는다. 사회학자 조형근에게 역사는 교훈이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몰랐다”는 말을 대신할 말을 찾기 위해서 물음표를 쥐고 가파른 근현대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납작한 이야기로 남은 인물에는 숨을 불어넣어 입체감을 더했다.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에 갇힌 이야기 속 숨겨진 복잡함으로 기꺼이 투신한다. 치밀하고 치열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 안팎을 함께 헤매는 일은 지적인 즐거움을 동반한다. 흑과 백의 세계에 사려 깊게 놓인 회색 돌 같은 이야기 덕분에 세계를 보는 해상도 역시 한층 높아진다.
과거를 성찰하는 이유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일 테다. 과거를 돌아보는 까닭은 우리에게 아직 미래가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역사 속을 산다. 그 안에서 ‘내 몫의 책임’을 헤아려보는 것은 역사가 남긴 상처에 연루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기꺼이 역사와 접속하고 부단히 세계와 이어지고 싶은 이들에게, 보다 옳은 말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다. 나는 이런 ‘옛날이야기’라면 하염없이 읽고 싶다.
김만권 (정치철학자, 경희대 교수)
: 조형근이 말한다. “재미를 위해 썼다”고. “역사를 알 고 싶다는 호기심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이 책에 ‘민족사’라든지, ‘역사 분쟁’에 도움이 된다든지, ‘교훈’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그런 거창한 목적은 없다”고. 이 말대로라면 이 책은 할 일을 다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사이의 세계를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노래를 아우르며 정확하면서도 빠른 호흡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호흡으로 역사를 알고 싶다는 끝없는 호기심을, 거창한 목적 대신 나와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지극한 앎의 의지를 자극한다.
그 호기심과 의지를 더욱 자극하는 건 조형근이 말 하는 ‘연루됨의 윤리’다. 이 책에는 불합리하고 부조리 한 역사적 사건에 더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촘촘히 연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과 연루된 우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와중 타이와 미얀마를 잇는 철도를 놓는 곳,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다고? 그 조선인은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거기에 있었을까? 80여 년이 지난 뒤에야 그 사연을 제대로 알게 된 나는 왜 그가 콰이강의 다리에서 한 일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해야 하는 걸까?
조형근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우리가 사랑하고 실수하는 인간, 꿈과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인간의 실존 조건이, 한 인간을 두고도 그 선악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게끔 한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우리는 인간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에 대한 질문을 놓을 수 없다. ‘연루됨’, 그 자체가 인간의 실존 조건이고, ‘자신을 역사에 연루시키는 일’, 그 자체가 인간 고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나를 끼워 넣는 일’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연루됨의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사유의 의미는, 우리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이 책에 담긴 열여덟 개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과거와 미래 사이로 틈입해 들어갈 수 있는 길,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