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정령사는 호텔 경영이 너무 쉽다 001화

제1화



1. 엔딩 혹은 뉴 게임



‘현실이 소설이라면 여기가 엔딩이겠구나, 싶은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결혼식에서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퇴장하는 커플들을 보았을 때.

끝났다고 여긴 코인의 자릿수가 달라지면서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연히 돌린 TV 채널 속에서 어떤 배우가 눈물을 흘리며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 역대 최대 게이트, 옐로스톤 국립공원 게이트의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 발견 당시부터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거라고 판단되었던 게이트로…….

- 특히나 대한민국 출신의 S급 헌터, ‘김정호’가 이번 공략에서도 공대장 역할을 맡으며 다시 한번 국위 선양을…….

언덕 위에 세워 둔 낡은 자동차의 라디오.

게이트 시대의 종막을 알리고 헌터 시대의 전성기를 여는 뉴스가 전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분명 이게 우리들의 엔딩이겠지.”

나는 손에 들린 싸구려 맥주 캔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파티장을 몰래 빠져나와서 무작정 차를 끌고 한참을 달려온 이름 모를 언덕이었다.

과연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인지 언덕 아래에는 지평선 끝까지 폐차장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쓸모를 다해서 다시 태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들의 집합소.

나는 자동차의 보닛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파티장 인근에 있던 한 기자에게 웃돈까지 얹어 주며 사 온 차량이었다.

“아니, 나 혼자만의 엔딩인가.”

맥주 캔을 기울여 내용물로 입술을 적셨다.

이름도 모르는, 그저 라스베이거스를 빠져나오는 길목에 있던 주류 상점에서 적당히 사 온 맥주였다.

나는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오늘만큼은 맥주가 필요했다.

내게 오늘은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었으니까.

‘처음으로 회귀를 했던 날이자 단 한 번도 이 이상 살아 본 적 없는 날이기도 하지.’

나는 회귀자다.

나의 죽음과 인류의 실패를 막기 위해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렸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오늘, 즉 20XX년 6월 23일을 넘기고 살아 본 적이 없다.

‘새로운 시작이냐 혹은 영원한 정지냐.’

나는 고개를 돌려 보닛 위에 올려 둔 아티팩트를 바라봤다.

손가락이 3개 펼쳐져 있는 비쩍 마른 잘린 팔. 얼핏 보면 미라의 일부 같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마력만은 이것이 어마어마한 아티팩트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소원 들어주는 손.’

옐로스톤 국립공원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것으로, 이름 그대로 사용자의 소원을 이뤄 주는 아티팩트다.

아마 등급을 측정한다면 ‘규격 외’ 등급 아티팩트로 분류될 터지만, 내 수많은 회귀 중에서 단 한 번도 이 아티팩트의 등급을 측정해 본 적은 없었다.

그야 내가 이 아티팩트를 협회에 제출하기 전에 먼저 회귀를 소원해 사용해 왔으니까.

‘이름도 내가 적당히 붙인 거지.’

기괴하게 생긴 외양과 달리 이제껏 소원이 비틀려서 이뤄지거나 소원의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경우는 없었다.

설령 그랬다고 한들 회귀라는 기적을 이뤄 낼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일지라도 값싼 대가일 터였다.

아티팩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그것에 내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 삐리리~.

전화가 울렸다.

미국 방문과 옐로스톤 게이트 공략을 위해 협회에서 지급한 군용 핸드폰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티팩트로 향하던 손을 핸드폰으로 뻗었다.

핸드폰에 뜬 번호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번호였다.

올 거라고 예상했던 전화였기에 나는 작게 웃으며 장난스레 전화를 받았다.

“헬로?”

- 헬로는 얼어 죽을! 너 지금 어디야!

핸드폰 너머에서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화난 목소리를 듣자 어쩐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야, 협회장님. 고생 많으시네.”

- 그 고생이 다 너 때문이잖아! 대체 파티장은 언제 빠져나간 거야!

핸드폰 너머의 상대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이자 세계 헌터 협회장까지 동시에 맡고 있는 내 친우였다.

개인의 능력과 집안의 권력을 이용해 젊은 나이에 협회장이 된 불세출의 사내.

물론 젊다고 해도 나보다, 정확히는 내 육체 나이보다는 열다섯 이상 윗사람이다.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힌 이후부터는 서로 말을 놓기로 했지만 말이다.

“알잖아. 파티는 내 스타일 아닌 거.”

-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잖아! 공대장이 파티장을 몰래 빠져나가면 어떻게 해, 김정호!

본명 김정호.

코드네임 ‘대동여지도’.

옐로스톤 국립공원 게이트의 공략대장을 맡았으니 확실히 이번 파티의 주인공은 내가 맞았다.

“네가 알아서 좀 해결해 줘. 어차피 그 인간들, 내 얼굴도 모르잖아.”

이번 회차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공개 석상에서 얼굴을 비친 적이 없었다.

협회 소속의 헌터들이나 관계자들에게도 말이다. 그게 가능한 건 나와 협회장의 관계 덕분이었다.

‘협회장 자리도 내가 앉힌 거나 다름없으니.’

지난 회귀들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일을 잘하면서도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는, 동시에 내게 충성스러운 놈으로 구했다.

- 진짜 X랄하지 마라.

아, 물론.

‘충성’이라는 의미에는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있으리라.

- 빨리 돌아와! 지금 여기 너 보겠다고 대기업 회장들부터 미국 대통령까지……!

“그리고 나 은퇴할 거라고 대신 좀 공표해 주고.”

- 이거 절대 나 혼자 감당 못……. 잠깐, 뭐?

“오. 여기 너구리도 있네.”

- 라쿤이겠지, 멍청아! 여긴 미국이잖아! 아니, 그보다 은퇴라니?

“그렇게 됐다.”

- …….

핸드폰 너머에서는 파티장의 떠들썩한 소음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친우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 또 회귀할 생각은 아니지?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역시나, 내가 고른 유능한 인사다운 빠른 눈치였다.

- 혹시 회귀할 거라면 말이나 해 주라.

“…….”

- 물론 네가 회귀하게 된다면 나는 이 일을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그래도…….

폐차장 위로 석양이 내려앉았다.

- 말도 없이 버려지면 허무하잖아.

하늘만이 유일한 위안일 폐차들은 말 없는 관중처럼 주홍빛으로 번져 가는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석양이 사라지고, 하늘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 오묘한 색감을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내 왼손에는 맥주 캔이, 오른손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소원 들어주는 손이 놓여 있었다.

멍하니 맥주를 홀짝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빈 캔을 연거푸 입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가만히 빈 캔을 내려다보다가 꾸깃꾸깃하게 구겼다.

‘지금 이것이 이상적인 결말이 맞나?’

내게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

다시 시작된 세상을 어느 누구보다 이상적으로 만들 능력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리해야만 하는 의무 역시 내게 있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나는 이미 수십 번을 회귀했다. 정확히 99번을 회귀했다.

내 전생 1회차를 끝장낸 주범이자 회귀의 기억 속 가장 거대한 장벽이었던 옐로스톤 국립공원 게이트의 공략은 49회차 때 이미 완수했다.

그 이후는 그저 ‘다듬기’에 지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달려왔지.’

이제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게이트 공략에 쓰인 회차보다 그저 이 세상을 다듬는 데 쓰인 회차가 더 많아졌다.

정치적 문제, 경제적 문제, 인적 문제…….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게이트 공략과 달리 다듬기는 끝이라는 게 없는 작업이야.’

다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완벽을 좇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구겨진 맥주 캔을 힘껏 던졌다.

캔은 저 멀리 폐트럭의 짐칸에 떨어졌다.

카랑, 캉, 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폐차장 전체를 쓸쓸하게 울렸다.

‘그래. 그만하자.’

그 누구도 내게 요구하지 않는 나만의 의무에 고통받는 걸 멈추도록 하자.

이제 그만하자. 여기에서 만족하자.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면 나는 영영 멈추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나올 때까지 망치로 제 작품을 내려치는 도공처럼, 나와 같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 있는 세계를 지금 이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인간성을 잃고, 영원히 회귀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나는 소원 들어주는 손을 집어 들었다.

누구도 다시는 회귀를 소원하지 못하도록 이대로 이것을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느새 사위는 어둑해져 있었다.

폐차장에 간간이 서 있는 전등만이 완전한 어둠에 무의미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빛에 꼬여 왱왱거리는 벌레들만이 그 외로운 싸움의 목격자였다.

‘이게 나의 엔딩인가.’

이런 쓸쓸하고 외로운 결말이.

다른 이들을 위해 세상을 다듬다가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런 결말이.

분명 내게도 바라는 결말이, 원하는 엔딩이 있었다.

이제는 구름 너머의 뜬소문 같은 시답지 않은 농담이 되어 버렸지만, 확실한 건 이런 재미없는 결말은 아니었다.

나는 부러뜨리려던 아티팩트를 바라봤다.

‘괜찮지 않을까.’

이제껏 남들을 위해 싸워 왔으니 한 번쯤은 나를 위해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기적인 소원을 하나쯤은 빌어도 되지 않을까.

많은 걸 바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남은 삶 동안 과거를 바라보며 후회에 빠져 살지 않도록.

그때 회귀할 걸 그랬다며 끝없는 회한과 자책 속에 빠져서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지 않도록.

과거가 아닌 현재를 직시할 수 있을, 자그마한 위안거리 하나만을 바랄 생각이었다.

나는 아티팩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을 바로 쥐었다.

“나는 바란다.”

소원 들어주는 손.

이제껏 인류를 구원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보물.

나는 그것에게 빌었다.

“내게 행복을 다오.”

순간, 소원 들어주는 손의 손가락 3개가 모두 접혔다.

회귀를 바랐을 때도 이랬다. 아마도 이루어 주어야 하는 소원의 크기에 따라 손가락의 개수가 다르게 접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내 행복을 바라는 소원이 회귀랑 비견될 정도로 어려운 소원이었나?’

의아함에 눈살을 살짝 찌푸린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나는 몸을 긴장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의 흐름이 비틀렸다.’

나는 익숙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사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다. 새로운 위안거리를 삼아 적을 던져 주든가 하는 경우 말이다.

‘내 행복은 끝없는 전투 속에 있다는 건가.’

어쩌면 이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껏 이기적으로 소원을 빌어 왔던 주제에 이젠 아예 나 혼자만의 구원을 바라는 행태에 아티팩트마저 질려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쓰게 웃음을 지을 때였다.

불쑥, 내 앞에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단숨에 일격을 내지르려던 나는 그 자그마한 크기에 한 번, 귀여운 모습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갈색 몸뚱어리, 머리 위에 돋아난 귀와, 엉덩이에 살랑이는 꼬리.

아무리 봐도 무해한 소동물이었다.

“라쿤?”

“나는 너구리야, 이 바보야!”

너구리가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나는 세 번째로 놀랐다.

너구리는 양발로 일어서더니 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돋아나 있던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스르륵 흩어지듯 사라졌다.

귀와 꼬리가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눈앞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라쿤이나 너구리 따위가 아니라 온몸에 갈색빛이 도는 자그마한 소녀였다.

소녀는 제 자그마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더니 가슴을 앞으로 쭈욱 내밀며 외쳤다.

“위대하고 고매하신 땅의 정령 공주, 노아! 이 자리에 강림했노라!”

나는 당황과 황당 속에서 어이가 없어 작게 웃었다.

훗날 뒤를 돌아보면, 그것이 99회차 인생에서 처음으로 터뜨린 웃음이었다.



* * *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만일 현실이 소설이라면 여기가 바로 시작 부분이겠구나, 싶은 순간.

삼각김밥을 입에 물고 달리다가 코너에서 누군가와 부딪혔을 때라거나.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데, 알고 보니 오전에 시비가 붙었던 이성이었다거나.

혹은 삶에 지친 회귀자가 정령을 만났을 때라거나.

그것이 나와 정령 노아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