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짐꾼(1)
1999년에 개방된 던전 게이트.
게이트에서 쏟아진 괴물들에 의해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규모 폭격으로도 괴물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람들 사이에서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을 대피시켜!”
“놈들은 우리가 막아 낸다!”
용감히 맞서는 각성자들.
사람들은 그들을 헌터라 부르기 시작했고, 괴물을 마수라 지칭하며 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다.
헌터들의 대활약으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2007년.
다수의 차원 게이트가 개방되면서 이계의 존재들이 나타나 지구를 침공했다.
차원 게이트의 숫자는 100여 개 정도로 추산되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차원들이 연결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차원에서 복수의 게이트가 개방되기도 했으니까.
“제기랄, 수인 놈들이 도시로……!”
인간을 하등하게 여기는 수인, 엘프, 드워프, 정령, 어인 등, 지구인들은 그들을 아인 또는 아인족으로 불렀으며,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지구인들은 인간족이 지배하고 있는 3개의 차원과 동맹을 체결하여 대응했다.
대한민국 제주도에서도 차원 게이트가 개방되어 현재 전라도와 경상도의 일부가 정령족들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아인족과 마수들의 공격으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경제는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철물점 사장 부부를 부모로 두고 대학을 겨우 졸업해 E랭크 헌터로 활동 중인 29살 남성, 박강혁은 한숨을 토해 내며 손바닥에 쥐어진 지폐를 바라봤다.
“15만 원.”
던전 게이트로 들어가 짐꾼으로서 벌어들인 일당이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15만 원은 나름 큰돈이었다.
부모님 사정을 알기에 강혁은 하루라도 빠르게 독립하여 헌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E랭크 헌터로 각성했단 사실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강혁의 스킬은 F랭크인 최하급 스켈레톤 소환이다.
갈퀴를 쥔 한 마리의 스켈레톤을 불러낼 수 있었다.
“스킬을 한 단계만 강화해도 스켈레톤을 다섯 마리까지 불러낼 수 있지만…….”
문제는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스켈레톤이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하급 스켈레톤은 F랭크 마수 하나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던전 게이트에서 볼 수 있는 스켈레톤 전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약함이다.
“후우…….”
그나마 짐꾼으로선 나름 훌륭했다.
짐꾼은 짐을 옮길 뿐 아니라 잡일까지 도맡았다.
힘든 일을 스켈레톤에게 맡겨 두고, 강혁은 가벼운 일거리를 처리했다.
덕분에 강혁은 다른 짐꾼들보다 조금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박 씨, 수고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혁은 씁쓸히 웃으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50분 정도 이동하여 집에 도착했다.
1년 전부터 시작한 독립생활.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5평 규모의 원룸.
경기 남부 일대는 한때 마수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었다.
덕분에 임대료는 상당히 낮아 쉽게 독립할 수 있었다.
강혁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옷부터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하아…….”
1년 정도 짐꾼을 하다 보니, 일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기분이다.
“진짜…… 스켈레톤이 없었으면 못 버텼겠지.”
강혁은 소환 해제된 스켈레톤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느꼈다.
스켈레톤은 파괴되지 않는 한 영구히 소환해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스켈레톤을 데리고 버스를 탈 순 없지 않은가.
때문에 출근할 때 소환한 스켈레톤은 퇴근할 때마다 소환 해제했다.
샤워를 마친 강혁은 곧바로 컵라면 하나를 들고 TV 전원을 켰다.
[금일 오전 7시경…….]
컵라면을 먹으면서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네.”
짐꾼도 경쟁이 심했다.
일당이 높은 경우에는 더더욱.
더욱이 헌터로서 던전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어도 E랭크 헌터는 쉬이 받아 주지 않았다.
E랭크 헌터들끼리 뭉쳐서 F등급 던전 게이트에 들어가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뉴스에서 사망자와 부상자들에 대한 소식을 연일 보도하고 있기 때문일까?
낮은 랭크의 헌터들은 높은 랭크의 헌터를 대동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높은 랭크의 헌터를 대동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성장을 위한 투자라며 일당도 못 벌어가는 경우가 태반이긴 하지만…….”
높은 랭크의 헌터가 버스를 태워 주지 않는 한 낮은 랭크의 헌터들은 느리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를 고용하는 비용은 하루에 수백만에서 수천만 원 가까이 된다고도 하던데…….”
강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급 헌터들이 1/N로 비용을 나누더라도 큰돈이 필요할 것이다.
관련된 사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고 말이다.
“통장에는…… 600만 원.”
1년간 열심히 번 소중한 돈이다.
국가장학금 덕분에 학자금대출은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대학생 시절 생활비는 부모님께서 보내 주셨었고.
헌터가 되겠다던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셨던 두 분이다.
‘이젠 내가 갚아야지.’
늦둥이 여동생이 곧 대학에 들어간다.
부모님 재산이 거의 없어 국가장학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막을 수 있겠지만, 생활비는 한 달에 수십만 원 이상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창창한 20대 초반에 누리고 싶은 것도 누려야지.
‘매달 용돈을 드려야 유나 생활비를 보낼 여력이 되실 거야.’
때문에 내년부터 여동생이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만 원씩 부모님께 보낼 예정이었다.
[김민찬 헌터의 테이넌 길드가 S등급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강혁은 부럽다는 얼굴로 TV를 바라봤다.
헌터의 등급은 F랭크부터 시작해 A랭크까지, 그 위로 S3, S2, S1랭크가 존재한다.
가장 높은 S1랭크 헌터는 최강의 헌터로 칭송을 받으며, 국가에서도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단 세 명뿐인 S1랭크 헌터.
그야말로 선택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스테이터스 레벨이 1일 때부터 A랭크 헌터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짜, 다른 세상 이야기네.’
강혁은 라면을 먹어 치운 다음 SNS를 살펴보다 곧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상은 매일 똑같이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테이넌 길드의 공고를 보고 다급히 짐꾼을 지원했다.
4일간 진행되는 건이다.
상당히 힘들긴 하지만, 일당이 무려 30만 원이나 했다.
즉, 4일 동안 12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의미다.
‘이건 해야 돼!’
[반갑습니다. 테이넌 길드입니다. 귀하와 함께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12월 23일 오전 9시까지 미금역 1번 출구로 와주시면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반드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미금역 1번 출구로 방문해 주십시오. 만약 시간에 늦을 시에는…….]
강혁은 주먹을 쥐면서 미소를 지었다.
“됐다!”
짐꾼을 구하는 사이트에선 짐꾼마다 점수가 존재했다.
강혁은 나름 높은 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간 부당한 일을 당해도 꿋꿋하게 버텨 내며 성실하게 작업을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테이넌 길드에선 바로 강혁을 고용했다.
“크리스마스에도 던전에 있어야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일당이 30만 원이니까.
강혁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흘이나 던전에서 지낸다고? 정말로 괜찮은 거니?]
모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강혁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던전 등급이 B이긴 하지만, 테이넌 길드 1군 길드원들이랑 움직이는 거라서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듣기로 1~2군 신입들의 실전 테스트를 위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마.]
“알고 있어요. 그보다 이번에 비타민 보내 드린 건…….”
[그래, 받았어. 잘 먹을게. 아, 네 아빠랑도…….]
“네, 바꿔 주세요.”
강혁은 부모님과 연락을 나눈 다음 여동생에게 문자를 하나 던졌다.
-나흘간 연락 어려우니까, 부모님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돈 보내 줄게.
-오오! 오빠 최고!
나이 차가 크기 때문일까?
여동생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강혁은 여동생 통장으로 15만 원을 입금했다.
그리고 부모님 통장으로도 각각 30만 원씩 입금한 다음 곧바로 테이넌 길드에서 공유한 던전의 상세 정보들을 확인했다.
‘미금역까진 30분이면 되려나? 조금 넉넉하게 40분…… 아니, 그냥 1시간 정도 잡고 출발하자.’
강혁은 스마트폰을 쥔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에이튜브에서 수많은 헌터들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F랭크부터 S랭크까지’란 채널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한 헌터.
방송 중인 헌터는 육체 능력을 높여 주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아, 진짜…… 육체 능력만으론 한계가 존재하네요.]
동료들과 함께 통제 구역으로 들어간 그는 마수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저도 최하급 익스퍼트 수준의 검기만 구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함께하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검기에도 다양한 경지가 존재하지만, 최하급 익스퍼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낮았다.
전문가의 경지에 이제 막 들어선 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최하급 익스퍼트의 검기는 일반인의 육체 능력으로 쉬이 베어 내기 어려운 고블린의 가죽을 잘라 낼 수 있었다.
[으아아악! 고블린들이……!]
최하급 익스퍼트의 검기를 구사하던 한 헌터가 다수의 고블린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몇 마리라면 모를까.
최하급 익스퍼트의 검사가 다수의 고블린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 후위에서 지휘를 내리던 중급 익스퍼트의 검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서걱-! 촤촤촥!]
“우와…….”
중급 익스퍼트의 검사가 단숨에 다섯 마리의 고블린들을 쓰러트렸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최하급 익스퍼트와 중급 익스퍼트의 움직임은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최고의 검술 전문가로 불리는 최상급 익스퍼트의 검사들 역시 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영상을 시청하던 강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재빨리 에이튜브 앱을 닫았다.
“자야겠다.”
강혁은 스마트폰을 머리 옆에 두고 수마에 빠져들었다.
이후, 12월 23일이 찾아오자 강혁은 아침 일찍 미금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번 출구에서 테이넌 길드의 셔틀버스를 타고 광교산으로 넘어갔다.
“아…….”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헌터들의 복장부터가 지금까지 봐 온 헌터들과 차원이 달랐다.
더욱이 그들을 지원하는 테이넌 길드의 직원들 역시 수십 명에 달했다.
“여어, 반가운 얼굴이네?”
강혁은, 자신을 향해 손을 든 청년을 바라봤다.
“……!”
강혁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코스닥에 상장된 건설사 사장의 자녀이자 대학 시절 B랭크 헌터로 각성한 녀석이다.
이름이…….
“이성호?”
“그래, 너도 테이넌 길드에 들어온…… 건 아닐 테고. 설마, 짐꾼이냐?”
“……그래.”
성호가 조소를 흘리면서 강혁의 위아래를 살폈다.
“고생하네. 학교에서도 쭈그리고 있던 너랑 잘 어울린다.”
“너는…….”
“아, 이번에 S3랭크로 승급했거든. 테이넌 길드 1군으로 들어오게 돼서…… 아참, 너도 아는 얼굴이겠네. 야!”
성호의 부름에 다섯 명의 남녀가 강혁의 주위로 다가왔다.
그들은 강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이 사람…… 어디에서 본 거 같은…….”
“아…… 너, 박강혁이지? 그…… 대학에서 항상 구석에 앉아 있던…….”
“아! 뭐야? 너도 테이넌 길드에 들어온…… 건 아닌 모양이네.”
강혁의 장비는 테이넌 길드 1~2군 헌터들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