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들이고 투자하는 헌터 001화

1화. 후회




격변한 세상 속에서, 유정은 비정한 삶을 살아왔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오로지 스스로의 보신이었다.


실로 이기적이고 또 지독할 정도로 계산적인 인생이었기에 그가 이룩한 발자취는 찬란했으나, 그만큼 남들의 피로 젖어 붉고 끈적였다.


그렇기에, 지금 유정이 맞닥뜨린 것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남긴 무수한 상처, 혹은 고통에 대한 대가라 할 수 있었다.


“서아야.”


잿빛의 도시 한가운데, 온몸이 걸레짝이 된 유정의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눈 좀 떠봐… 제발.”


간절한 것을 넘어, 처절해 보일 정도로 무너져 내린 유정의 얼굴과는 달리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


얕게라도 흘러나오던 여인의 숨이 끝내 멈췄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머리맡에 메시지창 하나가 떠오른다.


【투자처 ‘연서아’가 사망했습니다. 투자했던 능력, ‘빛 속성 마법’이 일괄 회수됩니다.】


“아아…….”


메시지창을 바라보는 유정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각성하여 헌터로 활동하던 지난 십수 년간 질릴 정도로 보왔던 메시지창이 이리도 원망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그녀의 죽음을 순순히 인정하라는 것 같아서.


결국 그녀 역시 너의 생존을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냐며 비웃는 것 같아서, 유정은 더 이상 메시지창을 쳐다보지 못하고 제 고개를 떨궜다.


연서아의 몸에 남아 있던 온기가 차분히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유정은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었다.


【투자처 ‘클로이 위버’가 사망했습니다. 투자했던 능력, ‘치유’가 일괄 회수됩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내의 얼굴 위로 또 하나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클로이…….”


우우우웅.


메시지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밀밭을 닮은 황금빛 마나가 유정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피어오른 마나는 곧이어 유정의 몸 곳곳에 나 있던 끔찍한 상처들을 치유해 나갔다.


흡사 성화와도 같이 피어오르는 황금빛 마나 속에서, 유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 온 게 아니라, 못 오는 거였나.”


지금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능력은 클로이에게 넘겨주었던 치유 능력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능력의 회수는 오로지 투자받은 이의 죽음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클로이는 이곳 전선과 멀리 떨어진 후방에 위치해 있던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마저 죽었다는 건, 이 전투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인간이 존재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처음 내가 구매했던 ‘치유’는 이 정도로 정밀하고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는데. 대단하네.”


수년 전, 유정이 구매하여 클로이에게 건네주었던 ‘치유’는 뭐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던 ‘일반’ 등급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과거의 그 보잘것없던 능력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투자자’인 유정에게로 돌아왔다.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발동되는 것도 모자라 능력에 사용되는 마나는 줄어든 것이 맞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었고, 치유되는 속도마저 압도적이었으니.


“흐…흐흐.”


유정의 입가에 헛웃음이 피어올랐다.


본래라면 경이로울 정도로 향상된 능력이 제품으로 회수되어 기뻐했겠지만, 당장 유정의 가슴을 채워내는 감정은 허탈함 그리고 씁쓸함이었다.


한참을 정신이 나간 인간처럼 웃어대던 유정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둑한 하늘 아래, 도시에 깔려 있는 아득한 적막만이 고개를 든 유정과 눈을 맞추어주었다.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도시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온전히 살아 숨쉬는 자신과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수백의 주검들뿐이었다.


도시를… 아니, 이 세상을 무너뜨린 원흉인 탐룡을 죽이는 것에 실패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광경이라면 광경이었다.


유정은 사람과 혈흔, 철근과 콘크리트로 산재되어 있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이재우.”


죄책감에 눈을 돌린 자신을 끝까지 친구로 여겨주었던 이의 시체를 마주했다.


“데이비드.”


세상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비정했으나 세상 그 누구보다 이 세계를 구하고 싶어 했던 이를 배웅했다. 그리고…….


“…서아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밖에 모르던 어느 인간 말종을 구제했던 여인을 두 눈에 담는다.


“이제… 나는…….”


새하얀 입김과 함께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선 조금의 기백도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목숨보다 더욱 소중해진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정은 삶의 의미를 잃었다.


이 세계에서 끝끝내 원하는 것을 강탈하여 사라진 탐룡의 뒤를 쫓아 결국 그녀를 죽여 없앤다고 한들, 유정이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대의?


압도적인 강자로서의 사명감?


애초에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영웅이 되었던 유정이었다. 이제는 이 빌어먹을 세상을 위해 굴러야 할 이유나 명분 따위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은 연서아의 얼굴을 몇 차례 쓰다듬은 유정은 이내 꿇었던 한쪽 무릎을 올리며 일어섰다.


어느새 하늘에는 푸르스름한 여명이 찾아왔다. 의미를 잃은 죽음들을 조용히 위로하던 새벽은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었다.


크르륵…….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내의 귓가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아…….”


유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 십 수년간 투자했던 모든 능력을 회수하여 이제는 그 탐룡과 맞붙을 정도로 강해진 유정이었다.


그 강함에 걸맞은 마나 감응 능력으로 주변 광활한 일대를 탐색한 사내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건 도저히…….”


전 세계의 영웅들과 그에 상응하는 강자들이 모조리 참여했던 전쟁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현실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격변한 세계에 생겨났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을 수많은 던전에 대항할 수단을 인류는 지금 이곳에서 모두 잃어버렸다.


제시간에 처리하지 못한 던전들은 그 속에 품고 있던 몬스터들을 이 세계를 향해 뱉어댈 테니, 이 사안은 탐룡과는 별개로 도저히 답이 없는 문제였다.


“끝인 건가.”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몬스터 무리를 손짓 한 번으로 몰살시키며 유정은 그리 중얼거렸다.


세상은 멸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 천천히 멸망해 나갈 것이다.


수백? 혹은 수천?


만약 마음을 고쳐먹은 유정이 한시도 쉬지 않고 세계를 살핀다면, 어쩌면 그 정도의 생명은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분명 그 속도를 늦출 수야 있겠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정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유정 한 사람이 감싸 안기에 이 세계는 너무도 광활하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네가 웃어줄까.”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을 표하는 사내의 얼굴은 너무도 지쳐 보였다.


그 순간, 밝아오는 여명이 유정의 눈 자락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유정은 다만 그대로 멈춰 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


헝클어진 도시가 햇빛에 잠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정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스름하게라도 느껴지던 탐룡의 기척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 느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런 유정의 표정에 분노나 아쉬움 따위의 감정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파르르 떨리는 눈가와 지긋이 다문 입술 위로 보이는 감정은 회한과 미련이 섞여 빚어낸 후회에 가까웠다.


“다르게 살았다면, 이 결말도 달랐을까.”


유정은 손을 뻗어 아침을 빛내고 있는 태양을 움켜쥐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유정의 거친 손아귀에는 차디찬 겨울바람만이 흘러들어올 뿐이었다.


“욕심 같은 걸 부리지 않고… 이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했더라면…….”


소중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고작, 그 하나를 지켜내지 못한 주제에 자신의 목숨만큼은 완벽하게 지켜낸… 이런 보잘것없는 결말을 이뤄냈음을 유정은 후회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정은 실패한 이들의 전형적인 넋두리를 내뱉으며 근처 널브러져 있는 콘크리트 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한 번 시작한 후회는 스스로를 향한 질책이 되어 그의 마음을 갉아냈다. 마치 모든 게 자신의 과오인 것 같이 느껴져 도저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한 번만… 정말 단 한 번만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간절한 진심을 담아 그리 기도하던 유정의 시야에 순간 다시 한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숨겨진 조건들이 충족되었습니다!】


“이건…….”


숨겨진 조건이라고?


무슨, 어떤 조건을 말하는 거지?


유정은 당혹스러웠다.


그간 셀 수도 없이 봐왔던 메시지창 위로 난생처음 보는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소유하고 있는 공적치가 100,000,000 Point 이상입니다!】


【회수에 성공한 ‘전설’ 등급 능력이 10개 이상입니다!】


【‘전설’ 등급 보스를 10체 이상 섬멸했습니다!】


【‘상점’의 이용자가 세계의 조정을 ‘진심’을 다해 원합니다!】


【상점 리스트에 ‘신화’ 등급의 능력이 추가됩니다!】


“뭐?”


안 그래도 얼이 빠져 있던 유정의 눈이 더없이 크게 뜨여졌다.


능력이든, 아이템이든, 신화 등급은 지난 십수 년간 상점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등급이었다.


“상점, 개방.”


유정은 등급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 있는 상점의 리스트 속에서 유일하게 검은빛을 발하고 있는 글자를 읽었다.


“역행(逆行), 구매.”


유정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앞으로 새하얀 게이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적치 100,000,000 Point, 무작위로 선택된 전설 등급 능력 10개를 지불합니다.】


【역행(신화)이 구매되었습니다.】


【세계의 조정을 위해 이용자를 과거로 회귀시킵니다. 단, 시점은 이용자가 절망했던 순간들 중 가장 먼 과거입니다.】


【해당 능력은 영혼당 한 번 사용할 수 있으므로, 과거로 돌아가 다시 조건들을 충족하여도 해당 능력을 재구매할 수 없습니다.】


“…돌아갈 수 있다고?”


게이트 옆에 띄워진 설명을 찬찬히 읽어 나가던 유정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빠진 호흡을 내뱉으며 유정은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정말로?”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메시지창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사실일 것이다. 아니, 제발 사실이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리라.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


메시지창의 마지막 문장을 되뇌던 유정의 입꼬리가 얇은 호선을 그려낸다.


그 단 한 번의 기회면 충분했다. 고작 그 한 번의 기회로 많은 것들을 바꿔낼 자신감이 유정에게는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상(異狀)이 자신의 간절함에 응답한 신의 연민일지 혹은 또 한 번 이 지옥을 겪어내길 원하는 악마의 희롱일지 모르겠으나. 유정의 선택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행, 발동.”


투자가(投資家)라는 이명으로 불리웠던 영웅, 유정은 창백할 정도로 환한 빛을 내뿜는 게이트를 향해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