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제1편
“끄응, 이걸로 끝인가.”
한 젊은 청년, 이현우가 적당한 크기의 상자에 큼지막하고 상품성 있는 고구마를 트럭에 10박스 이상 쌓아 올렸다.
“오늘도 수고하는구만. 그래서 벌이는 괜찮아지고 있는가?”
“뭐 늘 똑같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수준이지만 이게 편하네요.”
강우가 1달 동안 뼈 빠지게 노력해서 버는 돈은 대략 1천만 원이다.
많은 것 같지만 최근 인기가 많은 게이트 농산물의 종잣값이 상당하다.
대략 500평, 평수로는 넓어 보이지만 논밭으로 쓰기에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규모의 밭이다.
거기에 뿌리기 위한 종잣값이 매달 500만 원이며, 농기계의 기름값이라든가 농작물을 가꾸기 위해 이것저것 쓰는 것 등을 빼면 200만 원 초반대의 돈이 남는다.
종잣값이 더럽게 비싼 건 당연한 게, 기존의 농산물보다 월등히 영양소도 풍부하고 맛도 월등히 뛰어난 게이트 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게이트 내부라는 위험성과, 게이트 내부라고 무조건 있다는 법도 없고 소량으로밖에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씨앗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
거기에다 듣기로는, 게이트 내부의 물건을 판매하는 공식 기관인 각성자 관리본부에 팔 때는 별로 돈이 안 되는데 각성자 관리본부에서 종자를 팔 때는 몇 배로 값이 붙는다고 한다.
폭리나 다름없지만, 해외에서 대량으로 수입할 수 있으니 힘없는 농부가 뭘 하겠는가.
그나마 국가 정책과, 해외 농산물 의존성을 줄인다느니 뭐니 하면서 농가 보조금으로 할인돼서 받는데도 대략 달에 500만 원이나 들어간다.
거기에 생각보다 시골에서의 삶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고, 농기계나 집도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는 마련할 수 없어서 대출을 끼고 산 것들이다.
그래서 원금 상환과 이자까지 300이나 매달 빠져나가 200만 원만 남지만, 혼자 사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럼 가 보겠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판매 대행업체 사람이 돌아가고, 현우는 한가롭게 TV나 시청했다.
[네, A급의 드레이크 둥지를 격파한 상위룡살자인 강찬격 씨, 안녕하세요~!]
대략 천 년도 더 된 옛날부터 갑자기 세상에 게이트가 나타나, 한때 이 세상을 멸망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시스템이라는 것을 각성한 각성자 혹은 플레이어라 불리는 존재들이 나타나 게이트의 몬스터를 처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과학 문명이 발전하며, 게이트의 몬스터를 소재로 방어구나 장비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 쓰는 방법이 생겨났다.
특히 에너지 자원으로 D등급 이상의 몬스터에게만 생겨나는 마석이 석탄이나 석유를 태운 것 보다 고효율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단순히 에너지원만이 아니라 농산물까지 게이트 내부에서 발견된 종자가 지배하다시피 했다.
“상태창.”
『이름: 이현우 레벨: 1(0%) 나이: 27세
생명력: 100%
힘: 16 민첩: 10 체력: 19 기력: 0 마력: 0
특성: ???』 |
현우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각성자라는 존재였으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여전히 알 수 없었고 개화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법적으로 일단 각성하면 등록해야 하기에 각성자 자격증을 발급받긴 했지만 특성은 물론 무사가 되기 위한 기력도, 마법 계통이 되기 위한 마력도 없다.
거기에 특성까지 잠금되다시피 되어 있으니 당연히 F급이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G급이지만 그래도 각성은 했으니 그것보다는 높은 F급이다.
보통 평균적으로 각성해도 기본 E급에서 시작하고 특성이나 스탯이 빵빵하면 D급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각성자 대학교도 아니고 일반 대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모병제 사회로, 23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긴 했다.
하지만 현우는 성격상 누군가와 어울리기가 힘든 내향적인 사람이었고, 그게 문제였는지 사내 정치질을 당하기도 했고 은근한 따돌림도 당했다.
그래서 3년 정도 회사를 근무하다가 퇴사를 했고, 어떻게 살지 고민하면서 TV를 보다가 귀농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그 즉시 귀농을 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도 귀농생활의 나쁜 점을 예로 들며 현우를 설득했지만, 사회생활에 너무 지쳐 버린 현우는 흔히 말하는 힐링이 필요했다.
회사 다닐 때보다도 월급은 적었고 늘어날 전망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다만 현우도 남자인지라 TV를 틀면 나오는 각성자들의 삶을 나름 동경하긴 했지만, 사회생활을 너무 고되게 해서 그런가 이제는 그런 맘도 안 들었다.
“힘은 둘째 치고, 체력이 높네. 농사일이 힘드니 당연한가.”
기력과 마력을 제외하면 사람의 기본 스탯은 10이다.
1년 이상 농사일을 하면서 힘과 체력이 제법 꾸준히 상승했다.
소문으로는 1레벨을 업할 때마다 스탯 포인트 5개가 주어진다는데, 현우는 농사일로만 15를 올렸으니 실질적으로는 4레벨인 셈이었다.
민첩이 전혀 오르지 않는 건, 기술적인 건 죄다 농기계가 대신하고 있으니 전혀 오를 일도 없었다.
가끔 밭에 나가 잡초를 뽑는 것도 단순 반복 작업이라 체력이 오르지, 민첩이 오르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힘들긴 정말 힘들구나.’
이제 겨우 초보 딱지를 뗀 농사꾼이라 그런가 체력 스탯이 꽤나 상승한 지금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는 녹초가 될 것만 같았다.
“씁, 기력 스탯만 있었어도 건강 용도로라도 무공을 익힐 수 있었을 텐데.”
무공은 기본적으로 자연지기를 정제, 가공하여 하단전에 내공을 쌓는데, 하단전은 신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거기에 내공이 쌓이면 그 자체로 신체가 건강해진다.
“……뭐?”
지금까지 어떤 방법을 써도 개화하지 않던 특성이 뜬금없이 이제 와서 개화한다는 것에 현우는 기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27살이지만 사회생활 중 너무 단기간에 온갖 쓴맛을 봐서 그런가, 이젠 기쁘지도 않고 그냥 어떤 특성인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응?”
이상한 등급에 현우는 눈을 비비적거리고 다시 확인해 보니, 변하지 않고 SSS라는 괴상한 등급이 나타났다.
이 세상의 특성은 2종류로, 성장형과 고정형이 있다.
성장형은 처음에는 급이 낮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진화를 거듭하며, 성장치가 높을 경우 최고 랭크라고 여겨지는 S랭크까지도 성장한다.
반대로 고정형은 각성하자마자 랭크가 더 이상 변동하지 않지만, 성장형과 달리 처음부터 꽤나 높은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두 인터넷에서 카더라로 들은 거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세계 최고의 각성자들도 S랭크 특성과 함께 S랭크 각성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SSS랭크라니, 마치 예전에 유행했다는 웹소설 같은 느낌의 랭크가 아닌가.
“그나저나 서고(書庫)? 사서 관련 능력인가?”
현우는 별다른 감흥조차 없이 일단 무슨 능력인가 싶어 개화한 특성을 눌렀다.
| -무한서고(無限書庫): 삼라만상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다는 허공록(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
딱 한 줄짜리 명칭이긴 했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무한서고 접속이라고 하면 되는 거냐?”
현우는 어떻게 능력을 발동시키는지 알 수가 없어 상태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중얼거린 그의 말에 반응하듯 현우의 시야가 반전되더니 이내 다시 정상 시야를 회복했다.
“우와…….”
힘든 사회에 찌든 현우조차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장대하게 넓고 거대한 책장에는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책이 존재했다.
이름 그대로 무한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서고였다.
“안녕하세요~!”
그때 작은 손바닥만 한 예쁘장한 요정 같은 것이 나타났다.
“누, 구?”
“저는 이 무한서고의 사서 정령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무한서고의 관리자이자 주인님이 생겨서 다행이에요.”
스스로를 사서 정령이라 밝힌 존재는 현우를 보자마자 주인이라 인식하며 현우의 손바닥 위에 착지했다.
“그, 그러니? 그러면 뭐라고 불러 주면 되니?”
“그건 주인님께서 정하시면 돼요. 저는 이 무한서고 그 자체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부르시면 나타나 주인님이 원하는 지식을 찾는 존재니까요.”
“그러면 서아(書兒)라고 부를게.”
책의 아이라는 뜻으로 단순하게 작명한 거지만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했다.
“인식명 등록 완료.”
“그런데 무한서고는 어떤 능력이니? 아니,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 거니?”
막상 능력을 얻긴 했는데 책이 워낙 무한하게 많다 보니 뭘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으음…… 무공을 예로 들자면 시장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기초부터 고금 5대 절학이 모두 존재한답니다.”
서아가 가볍게 핑거 스냅을 하자 수백 권 이상의 책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한글로 온갖 무공 제목이 있었고 개중에는 A급 이상의 무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뒹굴었다.
특히 태극신공, 반야신공, 천마신공 등 S급으로 유명한 것들도 있었다.
“근데 나는 기력 스탯이 없어서 이걸 못 익혀.”
기력 스탯은 회복이나 그런 거랑은 상관없이 기에 관련된 재능을 상징하는 스탯이다.
이게 높으면 뛰어난 상승 무공을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재능의 척도였다.
“네? 그러면 기력 스탯을 만들면 되잖아요.”
서아가 다시 핑거 스냅을 하자 몇 개의 책이 날아왔다.
“대현자이자, 연금술의 궁극인 현자의 돌을 직접 제작한 대연금술사의 비약 제조법이랍니다. 여기에 있는 비약을 만들면 없는 재능도 만들 수 있답니다.”
서아가 보내 주는 책에는 ‘대연금술사 생제르맹의 비약 비전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생제르맹의 비약 비전서(스킬북/S): 대연금술사이자 연금술의 궁극에 도달한 생제르맹의 모든 비약 제조법이 적혀 있다.
-제한: 무한서고의 주인 |
무려 S랭크의 물건인데 제한은 말도 안 되게 쉬웠다.
보통 S랭크의 스킬북 같은 경우 특성과 스탯이 요구하는 조건이 높은데 이건 그것도 없다.
“기력뿐만이 아니라 마력도 대현자급의 재능을 가질 수 있는 비약도 있는걸요.”
마력은 마법사나 마법 계열의 힘을 익힐 수 있는 재능의 척도로,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고작 20명만 타고나는 나름 희귀한 재능이다.
“그렇구나.”
아마 예전이었으면 최강의 무공이나 마법을 익히며 화려한 각성자로서의 삶을 꿈꿨겠지만, 고작 3년 만에 세상의 온갖 거친 풍파를 겪어서 그런가 굳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건강 용도로 적당한 무공을 하나 익혀야지.’
큼직한 일은 농기계로 하지만, 농기계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는다.
그리고 귀농해서 적당한 크기의 땅이라고 해서 샀는데 생각보다 커서 혼자 관리하려니 죽을 맛이다.
“그런데 이거 익힌다고 해도 여기에 쓰여 있는 재료랑 이름이 다를 수도 있잖니?”
“아, 그거라면 이걸 쓰세요.”
또 핑거 스냅을 하니까 또 하나의 책이 나왔다.
-데카라비아의 서(스킬북/S): 삼라만상의 모든 광물과 식물의 지식이 담겨 있어, 이것을 익힌다면 모든 광물과 식물에 대해 통달하게 될 것이다.
-제한: 무한서고의 주인 |
“진짜 없는 게 없구나.”
“그야 당연하죠. 전 우주의 모든 지식이 기록되는 아카식 레코드도 겸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