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시인)
: 누군가의 알지 못할 슬픔이란 수천 년 동안 어딘가에 놓여 있는 돌멩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풍파를 겪으며 어딘가에 오롯이 있을 것이다.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러므로 돌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돌의 등고선을 읽고 돌의 시간을 헤아리는 것과 같다. 돌조차 되지 못해 공기 중에 떠다니기만 했던 우리의 슬픔들을 존 케닉은 돌처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이 책을 읽 어나가면, 그 돌이 우리 손바닥 위로 차례차례 건너온다. 정확하게 만져지는 단단한 슬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오래 겪어온 슬픔들이 이름을 얻고 거기 놓여 있어서 너무 반갑고 너무 좋아 계속해서 웃었다. 내 덧없고 가없고 종잡을 수 없었던 슬픔들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걸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평생 내 손 닿는 곳에 두어야 할 책 한 권임에 틀림없다.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찾은듯, 잠에 꼭 맞는 베개를 찾은듯, 당신의 슬픔들이 반갑고 기뻐서 지을 당신의 표정이.
신형철 (문학평론가)
: 감정의 피라미드 꼭대기엔 고통(pain)있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에 따르면 어떤 고통은 그 실재성을 의심받기 때문에(“정말 아프기는 한 거야?”) 그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형상을 부여해서 공적 공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연대’다. 피라미드 중간엔 슬픔(sorrow)이 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슬픔과 같은 정념에 종속돼 있을 땐 그것을 명철하게 인식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슬픔에 분석적 언어를 입혔다. 이것은 ‘성찰’이다. 피라미드 아래쪽엔 기분(mood)이 있다. 그 어느 날과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난감한 기분은 적절한 단어와 정확한 비유로 표현될 때 비로소 내가 다룰(즐길) 만한 것이 된다. 이것은 ‘창작’이다. 존 케닉은 이 피라미드 위를 오가며 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묵묵한 위로, 자신의 슬픔을 위한 지적인 언어 처방, 그저 온갖 기분들에 대한 눈부신 시 쓰기. 케닉 씨, 이것도 명명해보세요. ‘구상은커녕 상상해 본 적도 없지만 읽으면서 뭔가 뺏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좋은 책 앞에서 느끼는 허탈한 쾌감.’